산업 기업

하청직원 10년새 반토막…조선 3사 모두 중국산 블록 조달 '고육책'

[인력난에 中 의존 커지는 조선사]

숙련공 부족에 블록 공급 늦어지고

공정 지연·선박 인도차질로 이어져

막대한 건조비용에 인건비 인상 부담

외국인력 늘렸지만 숙련에 수년 걸려

"중국산 블록 하청수요 더 늘어날 것"





서울 여의도의 3배에 달하는 울산 HD현대중공업(329180) 조선소에는 2만 5000여 명의 원·하청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울산 지역의 조선 협력사들은 1972년 HD현대중공업 창업부터 동고동락하며 거미줄 같은 가치사슬(밸류체인)을 통해 작은 철판에서 축구장 3배에 달하는 대형 가스선까지 만들어왔다. 더욱이 우리나라 조선업은 국산화 비중이 높다. 포스코와 현대제철·동국제강 등이 만든 후판을 가공해 협력사들이 블록을 만들어 조선소에 납품한다. 선박 엔진도 HD현대중공업의 엔진사업부나 한화오션(042660)이 인수를 추진하는 HSD엔진 등 국내 업체들이 전부 제작한다. 크고 작은 기자재도 국내 협력사들이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에 들어가는 LNG 화물창 원천 기술은 프랑스 기업이 가지고 있지만 제조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조선업에 근무하는 원·하청 인력은 2014년만 해도 20만여 명에 달했다. 그랬던 것이 지난해 말 10만 명이 채 되지 않으며 반 토막이 났다. 조선업 호황기에 들어서며 수주 물량이 크게 늘었지만 인력은 10년 전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것이다. 당장 상선용 블록을 만들 협력사 내 인력이 사라지면서 블록 납품마저 미뤄지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HD한국조선해양(009540)은 이날 기준 총 155척(해양 설비 1기 포함)을 수주하며 올해 수주 목표 157억 4000만 달러(약 20조 7700억 원)의 138%를 잠정 달성했다. 삼성중공업(010140)과 한화오션도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가 선박 수주로 올해 하반기 이후 본격적인 흑자 전환을 이뤄냈다. 조선이 화려한 부활의 뱃고동을 울렸지만 그 이면을 보면 고민이 많다.



하청 인력난이다. 조선소들은 하청에서 블록을 공급 받아야 하는데 납기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각 조선소들이 비상이 걸린 이유다. 울산의 한 협력사 관계자는 “블록 납품이 지연돼 한 번 공정이 밀리면 연쇄적으로 다른 공정도 지연된다”며 “이런 식으로 공정이 지연되기 시작하면 마무리 단계인 선박 인도를 적시에 못할 가능성이 급격하게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박 블록은 용접 숙련공 등 많은 인원이 투입돼야 한다. 2015년 이후 조선업 침체 시기 숙련공들이 대거 조선소를 떠났고 삼성 반도체 공장이 건설되는 평택 등에 자리 잡고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도 올해 외국인 인력 비자 요건을 완화해 상반기에만 조선소로 들어온 외국 인력(E7 비자로 입국한 숙련 노동자)은 1만 104명에 달한다.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들이 숙련공 중심으로 돌아가는 조선업 공정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수년이 더 걸린다는 문제가 있다.

조선소들도 인건비를 더 올리기는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조선 3사들이 올해 흑자로 속속 전환되고 있지만 선박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초기 투입 비용이 대거 들기 때문에 실제 가지고 있는 현금은 넉넉하지 않다. 한화오션은 올해 상반기 노사 임금 협상 타결을 하는 데만 200억 원을 지출했다.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이 있는 거제 지역 조선 협력사에 주는 기성금도 지난해 5% 안팎 인상에 이어 올해도 10% 가까운 인상 폭을 보였다. 울산 지역 협력사들이 받는 기성금도 비슷하게 올랐다. 그럼에도 조선소는 당장 현금 사정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HD현대중공업은 올 10월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2척 건조를 위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2000억 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하기도 했다. 올해 흑자로 돌아섰지만 여전히 부채를 일으켜 선박을 건조해야 하는 상황이다.

조선 3사가 사실상 모두 중국산 블록을 들여오기 시작하면서 국내 조선업이 단순 조립 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 만든 블록보다 저렴하고 무엇보다 인력난 걱정이 없어 납기를 제때 맞출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중국산 블록 수요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은 이미 중국과 블록 거래를 상당 기간 해왔다. 한화오션의 중국 내 블록 제작사인 한화오션산둥유한공사의 올 3분기 매출은 1560억 원으로 수주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2년 전 209억 원 대비 6.5배 폭증했다. 그만큼 중국에서 블록이 많이 생산돼 국내로 들어온다는 뜻이다. 삼성중공업도 올해 대만 해운사 에버그린으로부터 수주한 컨테이너선 일부 블록을 중국의 헝리중공업에 하청을 주기 시작했다. 헝리중공업이 만든 선체 블록을 삼성중공업의 거제조선소로 가져와 조립하는 것이다. 이미 삼성중공업은 중국 CIMC그룹 계열 조선소에 일감을 주는 등 10년 넘게 중국 하청을 통해 블록을 받아오고 있었다.

조선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정이 늦어져 결국 선박 인도가 지연되면 막대한 배상금뿐 아니라 신뢰도가 추락할 수밖에 없다”며 “당장 외국인 근로자로도 생산이 안 되기 때문에 밀려 있는 수주를 쳐내기 위해 중국과 손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호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