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동십자각]낯 두꺼운 CEO

투자증권부 김영필 차장





사흘 전 박정림 KB증권 대표가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직무 정지 취소소송과 함께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는 소식이 여의도 증권가에 퍼졌다. 금융위는 지난 달 말 펀드 환매 중단으로 1조 6000억 원대 피해를 일으킨 라임자산운용 사태와 관련한 일부 판매 책임을 물어 박 대표에게 직무 정지 3개월을 부과했다. 주저 없이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을 보면 징계가 많이 아쉬웠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금융위의 최종 의결이 나온 날이나 KB금융(105560)지주 자본시장부문장에서 물러난 날,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한 날에도 박 대표는 고객과 국민들에게 어떤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KB증권은 소송은 개인 자격으로 한 일이라며 얼버무리는 데 급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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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회사에 다른 사례가 있다.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은 2009년 9월 금융위로부터 직무 정지 상당의 중징계를 받고 보름 만에 물러나면서 “우리은행에서 파생상품 투자와 관련해 손실이 발생한 데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는 말부터 했다. 동시에 “임직원들께 송구하다”며 “본인 문제로 조직의 성장·발전이 조금이라도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도 당국에 소송을 냈지만 최소한 겉으로는 고객과 임직원을 먼저 헤아렸다.

법적 대응은 개인의 자유다. 황 전 회장을 비롯해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징계를 받은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316140) 회장처럼 금융 당국의 무리수에 법원에서 결과가 뒤집힌 경우가 많다. 모든 내부통제 책임을 최고경영자(CEO)에게 묻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백 번 양보해도 그 과정에서 무너진 고객 신뢰와 실망감에 대한 도의적 책임마저 부인할 수는 없다. 과문해서인지 몰라도 이번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한 최종 징계 뒤 누구 하나 제대로 사과하거나 유감을 표시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신한투자증권은 전 대표가 직무 정지 4.5개월, KB증권 전 대표도 직무 정지 3개월을 받았다. 대신증권(003540) 전 대표와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는 각각 문책 경고 상당과 문책 경고 중징계를 받았다. IBK기업은행(024110)과 신한은행·신한지주(055550)는 과태료 5000만 원이었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금융사에) 관치가 없으면 정치판이 되고 정치가 없으면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의 내치(內治)가 된다”고 밝혔다. 이 말에 빗대면 지금은 내치를 넘어 후안무치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금융은 신뢰가 생명이다. 고객과 시장의 신뢰보다 자신의 억울함을 먼저 생각하는 행태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참에 위험관리와 대표이사 견제에 실패한 ‘허수아비’ 금융사 이사회를 전면 개혁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면 한다.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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