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올해 마무리된다. 6·25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1963년에 태어난 이들의 수는 700만 명을 웃도는데 이들 중 막내인 1963년생이 올해 60세 정년을 맞이한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앞으로도 20년 동안 매년 70만~80만 명의 은퇴자가 쏟아져 나온다. 현재 10대 인구가 40만 명대인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인구보다 은퇴자가 2배 많은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현재의 40대가 은퇴하고 영유아가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20년 뒤에는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40대 인구는 70만여 명인 반면 현재 0~5세 아동의 인구는 20만여 명으로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은퇴자 급증과 경제활동인구 감소로 인한 경제사회적 문제 가운데 의료비 폭증은 매우 심각하다.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인 1955년생이 80세에 도달하는 2035년부터는 건강보험 지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이 문제는 이미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건강보험통계연보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출한 진료비는 2022년 45조 7647억 원에 달했다. 2018년 31조 8235억 원에서 불과 3년 만에 44% 증가했다.
전체 진료비에서 노인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43%에 달한다. 건강보험 재정은 이미 사실상 적자다. 국민들로부터 걷은 건강보험료 수입은 73조 원인데 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한 급여비는 85조 원이다. 나머지는 담배부담금과 국고지원금 등 정부 재정의 도움을 받아 메우는 실정이다. 이대로 가면 갈수록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통계청 추계 인구를 보면 지금으로부터 20년 뒤인 2043년에는 경제활동을 하는 25~59세 인구(2043만 명)보다 은퇴 이후인 60세 이상 인구(2187만 명)가 더 많아진다. 이때 전체 진료비에서 노인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지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더구나 앞으로는 간병비까지 건강보험으로 커버해야 할 시대가 올 것이다. 소득이 부족한 노인과 그 자녀에게 하루 12만~13만 원에 달하는 간병비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므로 이를 모두 개인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사회적 방기나 다름없다.
의료비의 핵심 재원인 건강보험은 기금을 쌓았다가 나중에 지급하는 국민연금과 달리 그해 걷어 그해 지출하는 구조다. 건보료는 나이와 관계없이 수입이나 재산에 부과되지만 사실상 수입이 발생하는 청장년층으로부터 돈을 걷어 노년층의 의료비로 지급하는 게 현실이다. ‘국민연금보다 더 심각한 게 건강보험’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 상태가 지속되면 건강보험 누적 적자가 2050년 2500조 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있다. 건강보험은 수십 년 뒤 재정 곳간을 거덜 낼 주범이 될 수도 있다.
건강보험이 미래의 청년과 노인 모두에게 재앙이 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할 때다. 현재 건보료율은 7.09%로 불과 수년 뒤면 법정 상한인 8.0%에 도달할 것이다. 선진국 건보료율 평균이 대략 15%라고 하지만 우리나라가 법을 개정하면서까지 이 정도 수준으로 올리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건보료율을 크게 올리려 하면 소득의 절반 이상을 준조세(세금·사회보험료 등)로 내야 하는 청년층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결국 실손의료보험의 개편, 필수의료 중심의 수가 인상, 경증 질환의 본인 부담 인상, 의사 수 늘리기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최대한 늦춰야 할 것이다.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정년 제도도 하루빨리 손봐야 한다. 노인의 경제활동이 청장년층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노동인구 증가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노년 세대의 적절한 노동과 건강 유지는 건강보험 지출 감소와 건보료 수입 증가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최근 온라인상에는 ‘건보료 피하는 법’을 알려주는 영상과 글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조세 회피처럼 건보료 기피 현상이 만연해지고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 시스템과 노동시장 개혁 없이 건보료만 올리는 식으로 대응하면 이런 회피 현상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