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국방부는 2020년 8월 경항공모함(3만t) 도입을 전격 선언했다. 당시 국방부는 ‘2021∼2025년 국방중기계획’을 내놓고 경항모 확보사업 추진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2033년까지 2조6000억여원을 투입해 3만t급 경항모를 국내 연구개발로 설계·건조하겠다는 계획이다.
‘경항모’를 추진하는 것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일반적인 정규항모보다 크기와 배수량은 줄이되 첨단의 전투능력을 갖춰 효율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풀이된다.
3년이 흘러 윤석열 정부인 2023년 12월. 국방부가 발표한 ‘2024~2028년 ‘국방중기계획’에 경항모 사업 예산안은 ‘0원’이다. 국방중기계획에 예산을 한 푼도 반영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현재 진행 중인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추가 논의를 통해 사업 방향에 대해 결정하겠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내년 초 결과가 나오는 연구용역 핵심은 국내 기술로 개발 중인 ‘KF-21’을 함재기형으로 개조한 ‘KF-21N’을 경항모에 탑재하는 게 가능한지 등 사업 타당성을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경함모’ 당초 계획기간 내 도입 어려워
해당 사업은 일명 ‘한국형 항공모함’으로 불린다. 해군 관계자는 “2021년 발표 당시 청와대와 군 지휘부는 경항공모함이 해상·공중·지상 전력이 함께하는 합동작전의 결정체로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미 해군 주력 ‘니미츠급’ 항공모함들의 만재 배수량이 대략 11만 톤 전후인 것과 비교하면 체급은 작지만 주변국의 해상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력(함재기 등)을 탑재하기에는 손색이 없다는 게 해군 관계자들의 평가다.
그러나 전임 정부의 경항모 사업 추진 계획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숨고르기에 들어간 상태다. 기본설계 예산 72억 원이 책정됐지만 현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5월 예정됐던 기본설계 입찰공고가 아직도 실시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사업 방향과 타당성에 대한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다. 2020년 논의를 시작한 경항모 사업은 사업 타당성과 막대한 비용을 둘러싼 논란만 일으키다 좌초되는 모양새다. 이에 대해 주관 부처인 방위사업청은 사업이 종료된 것이 아니며 관련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분명한 건 현 정부에서 경항모 사업이 폐기된 것이 아닐지라도 당초 계획됐던 기간 내에 도입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는 경항모 건조 관련 예산이 없다. 그나마 국방부가 발표한 ‘2024~2028 국방중기계획’에는 ‘경항모 사업을 추진한다’고 명시는 돼 있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추가 논의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아 놓아 이래저래 말들이 많다.
국방부는 내년 초에 연구용역 결과가 나온다고 밝혔다. 국방부가 의뢰한 연구용역은 국내 기술로 개발 중인 KF-21을 함재기형으로 개조한 KF-21N을 경항모에 탑재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다. 또 함재기로 활용할 경우 그 비용은 어느 정도인지, 사업 타당성은 있지는 살펴보는 것이다.
해군은 당초 계획으로 미 해병대가 운용하는 ‘F-35B’를 탑재하는 걸 고려했다. 그러다 상황이 바뀌면서 KF-21를 함재기형으로 개조하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KF-21을 함재기형 개조에 대한 연구용역 결과를 실시하면서 사업 추진이 중단됐다. 무엇보다 KF-21은 아직 생산과 전력화가 시작되기 전이라 F-35B 탑재보다 비용과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연구용역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더라도 윤석열 정부에서는 사실상 사업 추진 자체가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막기 위한 3축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경항모 사업은 후순위를 밀려난 분위기다.
국방부 관계자는 “워낙 규모가 크고, 기술적으로도 확인할 사항도 많아 쉽게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며 “무엇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부분은 사업 결정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했다.
現 군 지휘부, ‘핵잠 도입’ 찬성파 많아
경항모 건조 비용은 함재기와 헬기, 항모를 호위할 구축함 등 최소 2조 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조기경보기, 군수지원함 등까지 고려하면 수십조원이 훌쩍 넘어간다. 국책 사업급 예산이 들어간다.
사업 타당성 문제는 군 내부적으로 중지를 모으고 있지 못해 해결해야 또 다른 숙제 중 하나다. 육군이 반대가 심하다. 경함모 도입 보다는 북한의 핵위협에 신속히 대응할 무기체계인 핵추진 잠수함이 도입 시기나 비용 측면에서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해군도 경항모가 왜 필요하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국민을 설득할 명쾌한 논리를 만들지 못하는 실정이다.
군 소식통은 “경항모 도입론의 필요성은 그 누구보다 해군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바뀌더라도 계속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분위기를 만들어야 가야 하는데 요즘은 해군 스스로 경항모 얘기를 전혀 하지 않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현재 군 지휘부는 핵추진 잠수함 도입에 찬성파가 많은 모습이다. 신원식 국방장관은 의원 시절에 경함공모함 보다는 핵추진 잠수함 도입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더 효과적이라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런 의중이 반영된 것인지 올해 하반기 장성 인사에서 잠수함 특기의 첫 해군참모총장이 나왔다.
해군잠수함사령관(소장)을 역임했던 양용모 해군참모총장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북한의 잠수함 전력에 정면 대응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이번 인선 배경에 대해 군 관계자는 “현재 한반도 상황을 고려하면 북한의 잠수함 위협이 증가하고 있어 대잠 능력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9월 북한은 SLBM을 최대 10기까지 장착할 수 있는 신형 전술핵공격잠수함을 진수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처음으로 해군절을 계기로 해군사령부를 방문해 향후 해군도 핵 억제력을 담당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우리 군으로서는 북한의 핵잠을 견제할 전문가와 무기체계 도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생긴 셈이다.
양 해군참모총장은 해군의 두 축인 수상함-잠수함 분야 중 그간 수상함 전문가가 맡았던 참모총장에 잠수함 전문가를 기용해 우리 해군력의 균형된 발전을 도모한 것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잠수함 전력 강화에 힘이 실린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北 잠수함 위협 증가 ‘대잠’ 전문가 필요”
미·중 패권 다툼이 더 치열해지면서 해양에서의 군사적·국가적 이익을 지킬 수 있는 항공모함은 핵심 전략자산으로 부각되고 있다. 뛰어난 전투능력과 주변국에 대한 기선제압 효과 때문에 각국의 군이 항공모함을 보유하길 원하고 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고도화에 우리 군도 경항모 도입의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
특히 항공모함은 단순히 해군 차원을 넘어서는 국가차원의 합동전력자산이다. 바다에 항공모함 1대만 띄워도 관할해역 주변에서 타국이 함부로 무력시위를 하거나 위협적 도발을 하기 어렵게 만들다. 그러나 현재 항공모함을 가진 나라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 스페인, 이탈리아 등 10개국 뿐이다.
한국전략문제연구소 한 연구위원은 “경항모의 방어 능력과 생존성, 함재기의 작전 능력과 작전 지속 능력 등을 고려할 때 시급하게 도입할 만큼 현재의 국가안보 전략과 부합한 지에 대한 의구심을 군 지휘부와 대통령실이 갖고 있어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기는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