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 칼럼]‘트럼프 재집권’ 피할 수 있다

그레그 사전트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여론조사서 강세 보이는 트럼프

대세론 타고 '독재 전환' 준비작업

'운명론적 악몽'에 빠지면 안돼

'민주주의 수호' 자신감 보여줄때






도널드 트럼프의 독재가 무서운가. 그렇다면 이 말을 명심하라.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독재자 트럼프에 대한 두려움 그 자체다.

이제는 더 이상 트럼프의 독재 가능성을 부정하기 힘들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그가 내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트럼프의 우군들은 그의 재집권에 대비해 미국을 독재국가로 전환하기 위한 정교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고 유력한 칼럼니스트들은 앞다퉈 이 같은 시도의 성공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현재 상황에서 극단적인 비관론이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트럼프는 자유롭고 공정한 미국의 선거제도를 해치려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상태다. 그럼에도 트럼프와 그의 우군들은 재집권할 경우 법의 울타리를 짓밟을 충복들로 정부의 요직을 채우고 정적들을 제거하며 그에게 반대하는 ‘해충’ 같은 인물들을 ‘박멸’하겠다고 벼른다.

이런 상황이 우리의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음에도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 후보 지명을 위한 예비선거에서 독주를 거듭하고 있고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가상 대결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누군가 말했듯 대다수 유권자들은 마치 독재 체제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듯 보인다. 정말 그런가.



그렇지 않다. 여론조사 결과가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단지 이 같은 수치를 근거로 시민 정신이 약해졌다거나 유권자들이 민주주의의 위기에 무심하다는 식의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거의 매일 터져나온 트럼프의 ‘정치적 망동’에 가려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그의 재임기에도 희망 어린 조짐이 있었다. 2017년 트럼프가 무슬림 입국 금지 명령을 내리자 시민들은 공항에 모여 이들을 지지하는 깜짝 시위를 벌였다. 사학자인 라라 퍼트넘과 시다 스코치폴이 작성한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그로부터 1년 후 평소 정치에 냉담했던 중년 여성들 사이에 조직적인 민주주의 수호 움직임이 일어났고 그 여파로 민주당은 2018년 중간선거에서 선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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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평가되기는 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반민주적 행태에 대한 제도권의 반응은 놀랄 만큼 양호했다. 2020년 대선 패배를 뒤집으려는 트럼프의 시도는 법원에서 장벽에 부딪혔고 의회는 선거인단 투표 시스템 조작을 방지하기 위한 관련 법 개정안을 초당적으로 승인했다.

물론 트럼프가 차기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여론조사는 선거일 훨씬 이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유권자들의 비개입적인 태도를 반영한다. 반면 경계론자들의 지나친 호들갑은 그보다 훨씬 심각한 위기 요인으로부터 우리의 관심을 떼어놓는다. 뉴욕타임스의 자멜 보위가 지적했듯 불합리한 선거인단 제도와 연방 대법원의 투표권 제한 판결이 MAGA(트럼프의 열성 지지자) 집단처럼 민주주의에 적대적인 소수파에 속한 유권자들이 수적 열세를 딛고 트럼프를 다시 권좌에 앉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관건은 트럼프와 그의 쿠데타 시도를 도운 조력자들의 사법 처리다. 이들을 사법 처리하는 데 실패한다면 자신의 심복으로 물갈이한 연방 법무부의 변호사들을 총동원해 집권 2기의 불법적인 어젠다를 집행할 것이라는 그의 협박은 실행에 옮겨질 것이고 이를 막으려는 노력은 수증기처럼 증발해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성공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트럼프를 기소하는 과정에서 검찰은 예상하지 못한 강인한 결기를 보여줬다. 그들의 실패를 섣불리 예단하지 말아야 한다.

비관적인 경고가 난무하는 것은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유권자들의 안일한 심리 상태를 부수기 위해서일 테다. 그러나 독재자들의 집권 행태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루스 벤 지아트는 지나치게 비관적인 경고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역사적으로 독재자들은 그들의 승리가 ‘시대적 필연’이라는 주장을 앞세워 유권자들을 설득했고, 이 같은 전술은 늘 효력을 발휘했다.

필자의 의도는 지금의 위중한 정치 상황을 희석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심각한 우려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흘려보내고자 함이다. 정치학자인 브라이언 보이틀러의 지적대로 불가피한 숙명론으로 꾸며진 트럼프 대세론은 그의 폭압적이고 불법적인 행동이 나올 때마다 민중의 절대다수가 공개적으로 반발했다는 사실을 덮어버리면서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에게 반트럼프 운동이 미약하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운명론적인 악몽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방어 태세를 갖춘 자경단의 신중한 자신감이 필요하다. 미국은 이미 한번 트럼프를 패퇴시켰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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