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한 두대 보내면 어떻습니까. 놓치지 않으려고 뛰면 절대로 안됩니다. ”
홍그루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HCM 환자가 진료실을 나설 때마다 신신당부하곤 한다. 지하철 문이 닫히려는 찰나 급히 뛰어가서 탄 직후 의식을 잃었던 30대 직장인이 응급실에 실려와 HCM 진단을 받은 사례를 접한 이후부터다. 증상이 없어 심근에 문제가 생기지도 몰랐던 환자는 지하철 같은 칸에 타고 있던 내과 전문의가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덕분에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홍 교수는 “기적적인 사례는 전체 HCM 환자의 약 1~2%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나머지 98~99%에 해당하는 환자들은 원인도 모른 채 갑작스럽게 사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하철 사례는 일부에 불과하다. 소위 ‘조급증’을 부르는 상황은 HCM 환자에게 치명적이다. 과거 증상이 발현된 적 없다가 첫 증상으로 돌연사를 당할 수도 있다.
종전까지 약물치료가 잘 듣지 않는 환자들의 유일한 선택지였던 심근절제술은 고난도라 숙련된 의사에 의한 수술이 필수였다. 한 번이라도 실신한 경험이 있거나 돌연사로 사망한 가족력이 있는 환자의 경우 삽입형 제세동기(Implantable Cardioverter Defibrillator) 시술도 고려해야 해 부담이 컸다. 그런데 침습적인 치료 없이 먹는 약 만으로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유럽심장학회는 캄지오스의 FDA 허가 근거가 된 글로벌 임상 한 건만으로 HCM 치료지침을 바꿨다. 현재 근거 수준과 편익에 비춰볼 때 임상 현장에서 써볼만 하다는 ⅡA 등급을 부여한 것이다. 추가 연구와 처방 경험이 쌓이면 최고 수준인 Ⅰ등급으로 상향될 것으로 관측된다. 홍 교수는 “임상에 참여한 환자의 57%에서 좌심실유출로 폐색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인 30㎜Hg이하까지 개선됐다”며 “약물을 복용하는 것만으로 HCM 증상이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수술 없이도 이러한 효과가 가능한 건 심장 근육을 이루고 있는 액틴과 마이오신 섬유의 결합을 직접적으로 억제하는 약물의 작용 기전 덕분이다.
하지만 캄지오스는 아직 국내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제약사의 환자지원 프로그램을 활용해도 비급여 기준 한 달 약값이 150만 원 상당이라 선뜻 권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홍 교수는 “기적적인 효과를 나타내도 보험 급여가 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는 희망 고문이 될 수밖에 없다”며 “하루 빨리 급여가 적용돼 더 많은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 혜택을 받게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