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아픈 애 태우고 약 찾아 뺑뺑이” 비대면진료 수요 높은데…약국 문턱, 더 높았다

복지부, 15일부터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보완방안 적용

첫 주말 비대면진료 이용 수요 급증…플랫폼업계 활기

이미지투데이이미지투데이




“비대면진료를 받으면 뭐합니까. 아픈 애를 달래가며 겨우 문 연 약국을 찾았는데, 30분 거리를 운전해서 갔더니 약이 없대요.”



경기도 분당에 거주하는 김가영(가명·30대)씨는 “몸이 아픈 환자가 영업 중인 약국을 검색해서 직접 찾아가는 것도 모자라 약 재고까지 일일이 확인해야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금요일 밤 8시가 다 돼 퇴근한 김씨는 아이가 미열, 콧물 증상이 있는 것을 보고 서울 종로에 위치한 내과에서 비대면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발급 받았다. 진료 의사는 ‘독감 검사를 하기 어려워 증상에 맞는 약을 처방해 줄 수 밖에 없다’며 록소프로펜 성분의 해열진통제를 포함해 총 5가지 전문의약품을 처방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비대면진료를 예약한 앱으로 집에서 가까운 약국을 찾기 시작했는데 ‘영업 중’이라는 안내와 달리 전화 연결이 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처음 연결된 약국은 재고약이 없다는 이유로 허탕을 쳤고 5군데 약국에 전화를 돌렸지만 처방전에 포함된 5가지 약을 모두 구비한 약국은 결국 찾지 못했다.

◇ 15일 밤 6시, 잠들었던 비대면진료 앱 깨웠다


17일 의료계와 플랫폼 업계에 따르면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기준 완화 조치로 사실상 서비스를 중단했던 비대면진료 플랫폼들이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5일 야간 혹은 휴일이거나 응급의료 취약지인 경우 과거 방문 이력이 없는 병원에서도 진료와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비대면 진료 대상을 크게 넓혔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섬·벽지 거주자 △장기요양등급 대상자 △장애인 △30일 이내 동일 질환으로 대면진료 이력이 있는 대상자 등으로 서비스 이용자가 제한되지만 오후 6시 이후부터는 누구나 비대면진료가 가능하다.




닥터나우를 필두로 나만의닥터·굿닥·올라케어 등 플랫폼들은 비대면진료 확대를 앞두고 정책 변경사항에 대한 공지를 띄우고 진료예약 서비스를 확대하는 등 대비에 나섰다. 보완 방안이 시행되며 비대면진료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이용자는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가장 많은 제휴 의료기관을 확보하고 있는 닥터나우 관계자는 “아직 정확한 집계는 나오지 않았다” 면서도 “시행 첫날인 15일에는 오후 3시경부터 예약 마감이 속출하는 등 평소보다 수요가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올라케어는 15~16일 이틀간 평균 비대면이용자가 최근 3개월(9~11월) 평균치보다 925% 이상 늘었다. 호흡기 및 감기 몸살로 인한 진료가 전체의 약 40%를 차지했다. 일선 병의원들도 비대면진료 수요가 예상보다 많아 놀랐다는 반응이다.

관련기사





용인 소재 A내과 원장은 “보완방안 발표 이후 만성질환으로 정기적인 약 처방을 받는 환자들의 문의가 많았다”며 “30~50대 젊은 환자들 중에는 퇴근 후 비대면진료가 가능할지 요청하는 분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독감, 마이코플라즈마 폐렴 등 호흡기 감염병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감기 환자가 속출하면서 비대면진료 이용 수요가 더욱 몰린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 “진료 보고도 약 못 타” 이용자 불만도 속출…현장 속앓이


하지만 늘어난 수요 만큼 약 조제와 관련한 불편감은 더욱 커졌다. 올라케어에 따르면 약국이 너무 멀어서 갈 수 없다거나 인근 약국에 갔으나 대체조제가 불가해 약을 지을 수 없는 등 약 조제와 관련한 불만이 이틀동안 고객센터 접수 내역의 약 35%를 차지했다. 비대면진료 대상은 늘었지만 약 배송은 기존과 마찬가지로 감염병 확진자 등 일부에 한해서만 허용되는 탓이다. 비대면진료 문턱을 낮춰 의료 취약계층의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약 배송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반쪽짜리라는 비판도 나온다.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보완방안 시행에 따른 변경내역 안내. 굿닥 캡처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보완방안 시행에 따른 변경내역 안내. 굿닥 캡처


서울시 A내과 원장은 “비대면진료 후 복약까지 잘 이어져야 하지 않나. 약국이 문을 닫거나 약이 없어 수령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보니 환자들의 불만이 고스란히 병원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실정”이라며 “수요는 많은데 당장 참여를 해야 할지 말지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플랫폼 업계도 비슷한 고민에 빠졌다. 사실상 전멸이나 다름 없었던 비대면진료가 보완방안 시행 첫날부터 활기를 띤 점은 반갑지만, 약 조제 관련 불편사항이 개선되지 않으면 이용 수요가 줄어들지 모른다는 우려가 컸다. 플랫폽 업계 관계자는 “서비스 확대 후 이틀 동안 비대면진료 이용 반응을 파악한 결과 약 수령 과정에서 혼선이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며 “비대면진료 이용자 수나 만족도는 당분간 추이를 더 지켜봐야 겠지만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의약사 단체들은 비대면진료 대상 확대 조치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14일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불참을 선언했고 대한내과의사회 역시 회원들에게 불참을 독려 중이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는 “정부가 의약계와 충분한 논의 없이 국민의 건강권과 직결되는 비대면진료를 확대하려 하고 있다” 며 “시범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와 약물 오남용의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