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인과 우리를 위한 결정입니다.”
보험 행정을 맡은 A 부처 B 산하 기관의 한 직원은 시설들에 폐쇄회로(CC)TV를 많이 설치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B 기관은 지난해 전국 각지에 소속된 94개 건물(지사·병원 등)에 CCTV를 2549대나 설치·운영했다. 본부 기준으로만 72대. 대부분 지사가 설치·운영 중인 CCTV가 20대를 넘겼다.
해당 직원은 “보험금 수령 업무 특성상 직원들이 많은 민원인을 만난다”며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데 대해 격분해 흉기를 들고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우리 사회의 거울이라는 공직사회가 이대로는 무너질 것 같다. 2000대 넘는 CCTV는 ‘제도를 못 바꾼 상황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한다. 하지만 효과는 악성 민원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는 때만 반짝인다. 창구 직원들은 분명히 민원인일 ‘그’가 문을 열고 자신의 앞으로 온 뒤 상담을 마치고 떠날 때까지 모든 게 불안의 시간이라고 입을 모은다.
공직사회의 ‘밖’보다 스스로 이 상황을 바로잡지 못하는 ‘안’이 문제다. ‘기강 해이 단속한다’ ‘투철한 사명감 갖자’ ‘국민의 봉사자로서 친절해야 한다’ 등 과거부터 사회를 지탱하던 말은 지시하는 자에겐 쉽다. 하지만 따르는 자에겐 거스를 수 없어 숨이 막힌다.
부당해도 공무원이라면 참으라는 지시의 말로는 끔찍하다. 노동시민단체인 ‘직장갑질119’와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13일 국회에서 연 산재 자살 토론회에서는 지난해 공무원의 자살 순직 건수가 공개됐는데 49건으로 전년보다 88%나 늘었다. 같은 날 인사혁신처가 공개한 중앙행정 기관 소속 공무원 1만 98명에 대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감정 노동은 정상을 벗어난 ‘위험’ 수준이다. 46.2%는 문제가 터지면 ‘개인적으로 참아서 해결한다’고 답했다. 우리는 올해 교사들의 잇따른 자살을 목도했다. 지난해 군인 자살 순직 신청은 193건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전체 자살 산재 신청 95건의 2배에 이른다.
공직사회는 법조문 몇 개 고쳐서 바뀌지 않는다. 헌법 제7조는 공무원에 대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과 사회의 정언명령이 공직사회 구성원 스스로의 가치를 부정해야 하는 ‘룰’을 만들었는지부터 봐야 한다. 상급자가 시키면, 나와 생각이 달라도, 새 정권이 들어서면 이 같은 3개 전제를 통한 지시가 언제까지 작동하게 둘지 고민해야 한다. 이 부조리에 대한 답을 찾을 시간은 넉넉하지 않다. 이미 올해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남아 있는 게 바보라는 말이 들릴 정도로 젊은 직원들이 너무 많이 떠난다. 공무원은 이렇게 일하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더 이상(젊은 직원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한 부처 공무원의 말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