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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서 황신혜까지…韓 현대사진 산증인의 '항해'

[서울시립미술관 구본창 개인전]

80년대 獨 유학후 '연출사진' 도입

초기작서 상업포스터·현재작까지

1100여점 5개 소주제로 나눠 전시

미발표작 '콘크리트 광화문'도 선봬

구본창 개인전 전시 전경. 사진 제공=서울시립미술관구본창 개인전 전시 전경. 사진 제공=서울시립미술관




2010년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영화 마니아들에게 호평을 받은 이 영화는 처연한 눈빛을 한 원로배우 윤정희의 얼굴이 가득 담긴 포스터로도 유명하다.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사진작가 구본창이다. 영화 ‘기쁜 우리 젊은날’의 포스터, 강수연의 영정사진 등 1980~1990년 대를 풍미한 청춘 스타들의 얼굴은 모두 그의 카메라를 거쳐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를 상업작가의 틀 안에 가둘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청자 대신 백자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은 작가, 스트레이트 사진이 주류를 이루던 한국 사진사에 ‘연출사진(making photo)’이라는 장르를 도입한 사진계의 이단아, 사진작가 구본창을 형용할 수식어는 차고 넘친다.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달항아리 사진을 찍고 있는 구본창 작가.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달항아리 사진을 찍고 있는 구본창 작가.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구본창의 대표작, 달항아리 사진 ‘문라이징 III’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구본창의 대표작, 달항아리 사진 ‘문라이징 III’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구본창의 ‘황신혜’ 사진 제공=서울시립미술관구본창의 ‘황신혜’ 사진 제공=서울시립미술관



현대사진의 길을 개척한 대표 작가 구본창의 사진 여정을 총망라하는 전시가 서울시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열린다. ‘구본창의 항해’라는 전시 제목처럼 그의 작가로서의 일생은 항해 그 자체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내 속에서 솟아나오려는 것’을 느끼고자 독일 함부르크 조형미술대학교에서 유학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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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창 /연합뉴스구본창 /연합뉴스


작가는 독일 유학 후 한국에 돌아와 1988년부터 객관적 기록이 아닌 ‘연출 사진’이란 예술사진을 제작해 한국 사진계를 흔든다. 지금이야 연출 사진을 보는 일이 무척 흔해졌지만 당시에는 ‘이게 사진이냐’ 라는 질타와 ‘이게 회화냐’ 라는 비판을 동시에 듣기도 했다. 세상 사람들은 멀쩡한 직업을 두고 ‘돈도 되지 않는 예술’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괴로웠지만 열정을 억누를 수는 없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첫 번째 공립 미술관 개인전이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국내 작가의 개인전 중에는 최대 규모다. 전시는 작가의 유년 시절 초기작부터 현재까지의 작품 세계를 ‘호기심의 방→모험의 여정→하나의 세계→영혼의 사원→열린 방’이라는 소주제로 소개한다. 전시를 발단, 전개, 결말로 구성해 작가의 50여 개 연작 중 43개 시리즈를 최초의 작업인 ‘자화상(1968)’부터 미발표작 ‘콘크리트 광화문(2010)’까지 연대기 순으로 보여주며 작가의 예술 여정을 살펴본다.

500여 점의 작품과 600여 점의 관련 자료, 작가의 수집품까지 총 1100여 점의 작품은 작가의 개인전이라기 보다는 한국 현대사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획전이라 할 만큼 역대급 규모를 자랑한다. 1층과 2층 사이 통로에서는 작가의 대표작 ‘문라이징 III’이 걸려 있다. 작가는 1989년 조선백자 달항아리와 그 옆에 앉은 여성의 사진을 보고 타국에 있는 조선백자를 찾아다닌다. 이 작품은 작가가 2004년부터 시작한 세계 곳곳의 조선백자 찾기 여정의 결과물이다. 영국 현대 도예의 아버지라 불리는 버나드 리치가 소장한 달항아리, 프랑스, 일본 등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 있는 달항아리 12점을 각각 다른 밝기로 촬영해 마치 달이 차고 지는 듯한 모습을 연상케 하는 신비로운 작품으로 제작했다.

이번 전시된 작품 중에는 구본창 작가의 컬러 사진이 실린 ‘대한민국 헌법(1987)’과 ‘현대문학(1998~2021)’ 표지 영상도 있다. 한국의 첫 법전을 출판한 현암사가 전면 개정된 새 헌법이 확정된 후 ‘법의 생활화’를 표방하고 헌법을 필수 생활 서적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사진작가들과 함께 제작한 책이다.

구본창 ‘콘크리트 광화문 03-1‘, 2010,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00×75cm. 사진 제공=서울시립미술관구본창 ‘콘크리트 광화문 03-1‘, 2010,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00×75cm. 사진 제공=서울시립미술관


구본창 ‘자화상’, 1972, 젤라틴 실버 프린트, 11×9cm. 사진 제공=서울시립미술관구본창 ‘자화상’, 1972, 젤라틴 실버 프린트, 11×9cm. 사진 제공=서울시립미술관


구본창 ‘탈의기 01’, 1988, C-프린트, 111×80.5cm. 사진 제공=서울시립미술관구본창 ‘탈의기 01’, 1988, C-프린트, 111×80.5cm. 사진 제공=서울시립미술관


또한 배우 황신혜 주연의 ‘기쁜 우리 젊은 날' 포스터, 영화배우 강수연, 이정재, 심은하 등 청춘스타의 인물 사진과 영화 포스터도 다수 볼 수 있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구본창 작가는 1980년대 후반부터 사진이 객관적 기록이라는 전통적 역할을 뛰어넘어 회화, 조각, 판화 등 다양한 매체의 속성을 반영해 주관적인 표현이 가능한 ‘연출사진 (making photo)’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예술 사진을 제작했다"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기획자로 국내외 전시를 통해 한국 사진의 세계화에 기여하며 한국 현대 사진의 새지평을 열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2024년 3월 10일까지.

서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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