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면 남을 거짓으로 대할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서 재상 폴로니우스가 해외로 떠나는 아들 레어티스에게 한 말이다. 자신의 가치관과 원칙을 지키는 행동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진정성을 인정받고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우는 대사다.
17세기 영국 보험 업계에서는 자신에게 충실하지 않은 행위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라고 칭했다. 건강보험 가입 후 술·담배를 늘리거나 화재보험에 가입한 뒤 불조심에 소홀해지는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케네스 조지프 애로 교수가 개념을 경제학에 접목했고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보험산업은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가 잘 발달해왔다. 예를 들면 자동차보험의 경우 자기책임원칙에 따라 피해금액 전액이 아닌 일정 한도로 부분 보장을 하고 있으며 가입자의 사고 이력, 운행 거리, 안전장치 유무 등 사고 위험과의 연관성을 고려해 보험료를 할인 또는 할증하고 있다.
예금보험은 금융회사가 부실해져 금융소비자가 맡긴 돈을 지급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 국가가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는 제도다. 개인이 직접 가입하지는 않지만 예금보험공사가 부실금융회사를 대신해 예금 지급을 보장한다. 예금보험 역시 금융시장의 도덕적 해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1996년 시행 초기부터 보호 한도를 설정했고 금융업권별로 계정을 구분해 보험료를 부과하고 관리하는 업권별 책임 체계를 구축했다.
2014년부터는 차등보험료율제도를 도입해 개별 금융회사의 경영 위험을 평가하고 최대 ±10%범위 내에서 보험요율을 다르게 부과하고 있다. 이처럼 금융회사의 자율적인 건전 경영을 유도하고 위험 감축 노력에 대해 보상이 적절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해소함은 물론 금융 안정을 강화하는 데도 대단히 중요하다.
최근 금융에 정보기술(IT)이 접목되고 리스크 유형도 다양해지면서 금융회사의 내외부 간 정보 비대칭성이 커지고 있다. 미래 차등보험료율제도가 더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금융회사의 변화하는 위험 요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보험료 산정에 적시 반영하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유인부합적 구조가 어떻게 하면 금융회사의 수용성을 높이면서도 동시에 부실 위험을 줄여나가는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예금보험공사가 금융회사와의 소통에 더 힘을 쏟고 있는 이유다.
차등보험료율제도를 도입한 지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금융제도의 안정과 금융계약자 보호를 위해 금융회사와의 소통을 기반으로 앞으로도 금융 산업의 미래 위험을 포착하고 함께 대응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