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플랫폼 기업에 대해 사전 규제에 나선 이유는 소비자의 불공정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의 사전 규제와 비슷한 강력한 규제를 덧씌우면서 국내 플랫폼 업계의 성장에 상당한 제약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구글 등 글로벌 기업이 포함될 경우 미국과 통상 마찰이 발생할 우려도 제기된다. 그렇다고 이들 기업을 제외하면 한국 플랫폼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어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할 가능성도 있다.
공정위가 19일 국무회의에서 보고한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가칭)’에 따르면 정부는 앞으로 영향력이 큰 일부 대형 플랫폼 사업자를 직접 지정해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자사 이용자에게 경쟁 플랫폼 이용을 금지하는 것), 최혜 대우 요구 등 4가지 반칙 행위를 하는지 여부를 상시 감시할 예정이다. 공정거래법에 기반해 위법 소지가 포착된 기업에 한해 조사·심의 후 제재를 내리는 ‘사후 규제’라는 틀을 깨고 일부 플랫폼 기업에 한해서는 위법 여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사전 규제’ 방식을 취하겠다고 공식화한 셈이다.
사전 규제 대상 기업은 공정위가 직접 정한다. 매출, 이용자 수 등 정량 지표와 시장구조, 시장 진입 장벽 등 정성 요소를 모두 고려한다. 구체적인 기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네이버와 카카오·쿠팡·구글·메타 등 주요 플랫폼 업체가 포함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정 주기는 3~5년 범위에서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법이 있는 EU는 3년, 독일은 5년마다 사전 규제 대상 플랫폼 기업을 지정한다.
공정위는 관련 법이 제정되면 공정한 시장 질서를 조속히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이로 인해 플랫폼 기업에 입점해 사업을 영위하는 소상공인과 스타트업이 수혜를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홍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2~5년까지도 걸리던 법 집행 기간이 절반으로 줄어들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공정위의 법 집행에 대한 기업의 항변권을 사실상 축소한 데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현행대로라면 공정위는 조사 과정에서 플랫폼 기업의 행위가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시장 획정), 해당 기업의 위법행위가 다른 경쟁 업체의 시장 진입을 막는 등 실제로 경쟁을 제한했는지(경쟁제한성 여부 판단)를 면밀히 판단한 후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를 상정한다. 조사 기간이 길어지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이 제정되면 사전 규제 대상을 지정하면서 해당 업체는 시장 지배력이 있고 그 업체의 행위는 시장 경쟁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미리 판단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공정위가 이같이 플랫폼 사전 규제에 나선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직접적인 독과점 폐해 해소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플랫폼 분야에서 독과점 문제를 언급했고 이후 정부 국정과제로 채택됐다. 정부는 당시 플랫폼 분야에서 입점 업체와 소비자의 불공정 피해를 막기 위한 자율규제 방안을 수립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후 주요 플랫폼 기업과 소상공인·소비자단체가 함께하는 ‘플랫폼 민간자율기구’를 출범하며 정부 규제가 아닌 기업과 관계자들의 자율적인 협의를 통해 공정 시장이 형성되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 ‘먹통’ 사태가 터진 뒤 분위기가 달라졌다. 윤 대통령은 “독과점 상태에서 시장이 왜곡됐다면 제도적으로 국가가 필요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공정위가 즉시 움직였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현행 공정거래법으로는 (플랫폼 독과점 행위를) 규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지 검토하려 한다”며 대응 방안을 모색한 것이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독과점화된 대형 플랫폼의 폐해를 줄일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직접 지시를 내렸고 이에 공정위는 대형 플랫폼 기업을 미리 지정해 위법행위를 한층 강도 높게 감시한다는 ‘사전 규제’ 방침을 공식화했다.
공정위의 이 같은 플랫폼 사전 규제 방침에 후폭풍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의 통상 마찰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대표적이다. 이는 구글·메타 등 주요 플랫폼 기업이 이 법의 영향권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이미 EU와 독일 등도 비슷한 법이 있는 상황”이라며 “국내 기업 보호를 위해 해외 기업에만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기에 통상 마찰 우려는 적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수차례 우려의 입장을 전달해왔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는 전날 “미국은 자국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력, 인공지능(AI)과 같은 미래 산업 동력 저해라는 판단에 따라 플랫폼 관련 법안을 폐기했다”며 법 제정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이들 기업을 제외하고 네이버·카카오 등만 선정할 경우 ‘역차별’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한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에만 족쇄를 채우게 될 경우 넷플릭스·유튜브의 통신망 무임승차 논란이 재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를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