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년 여 간 한국 미술 시장이 비약적으로 몸집을 키우면서 한국 작가들에 대한 해외 갤러리들의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이건용, 성능경 등 원로 미술가 뿐 아니라 독특한 방식으로 실험적 작품을 제작하며 수집가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작가들을 향한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미술품 경매 시장의 열기는 주춤했지만 국내 미술시장의 ‘원석’을 찾는 발길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갤러리 그림손 관계자에 따르면 ‘흙의 화가’로 불리는 채성필(51) 작가는 프랑스 갤러리 ‘마리안느 이브라힘’과 전속계약을 체결하고 현지 개인전을 열고 있다. 갤러리 그림손의 전속 작가인 채성필은 2003년 프랑스로 건너가 현재까지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추상화가로 흙을 소재로 인간과 자연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먼저 진주를 곱게 간 가루를 캔버스에 칠하고 그 위에 진흙이나 먹 등을 섞어 만든 안료를 뿌리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는데 물감이 캔버스를 흘러가는 모습이 마치 바다의 물줄기처럼 여러 갈래로 흩어지는 게 특징이다.
이 같은 고유한 제작 방식이 주목을 받으면서 그의 작품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영은미술관 등 유수의 미술 기관의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카카오, 보령제약, 신한은행 등 주요 기업이 그의 작품을 수집했다. 중동 국가의 왕실에서도 그의 작품을 수백 점 구매한 것으로 전해진다. 작가는 지난 7일부터 내년 2월 3일까지 마리안느 이브라힘 갤러리에서 전시를 진행 중이다. 내년 1월 중에는 국내에서도 개인전을 연다.
채성필처럼 고유한 방식으로 자신 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작가들과 해외 갤러리 간 협업 소식은 올해 꾸준히 이어졌다. 지난 3월에는 쇳가루로 추상 작품을 만드는 작가 이기성(64)이 서울, 파리, 런던 등 세계 주요 도시에 지점을 보유한 오페라 갤러리 소속작가가 되었다. 2016년부터 갤러리 비선재에서 전속으로 활동한 이기성은 캔버스에 쇠가루 반죽을 묻혀 붓으로 밀거나 손으로 으깨는 표현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유명하다.
올해 9월에는 디지털 이미지를 회화와 조각으로 변환해 물질의 잠재성을 탐구하는 작가 정희민이 타데우스 로팍과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작가는 다양한 예술실험을 통해 작품에 질감과 부피를 더하며 매체의 질료성을 연구하는데, 풍경화와 정물화를 비롯한 전통적 회화 장르를 자신 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게 특징이다. 국내에서는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등 유수의 기관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국내 작가와 해외갤러리의 협업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지난 해에는 원로작가 이건용이 페이스갤러리 전속이 되었고, 올해도 리만 머핀이 전위예술가 성능경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지난 2022년 처음 열린 ‘프리즈(Frieze) 서울’ 이후 해외 대형 갤러리들의 움직임은 좀 더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국내 실력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자주 접하면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기 시작한 것. 국내 작가의 작품을 해외에 소개할 뿐 아니라, 일부 갤러리들은 직접 서울에 지점을 차리고 한국 미술 시장을 공략하는 사례도 눈에 띄게 늘었다. 여기에 ‘K팝(POP)’의 세계적인 인기로 한국 문화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작가들이 해외 갤러리와 계약을 맺으면 자신의 작품을 해외 유수의 미술 기관에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이기성은 3월 이후 세계 곳곳에 작품을 소개하며 인지도가 크게 높아졌다. 정희민은 내년 11월 타데우스로팍 런던에서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국내 한 미술계 관계자는 “최근 미술 시장이 침체기라고 하지만 컬렉터들은 여전히 작품을 구매하고 있다"며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많은 작가들이 작가들이 대형 갤러리에서 활동하면, 작품의 가격도 자연스럽게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