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70년된 낡은 근로기준법 한계 인정…"자율근무제 모티브 될것"

■연장근로 계산 週단위로…대법, 근로시간 새 기준 제시

하루 몇시간 일했는지와 상관없이

주 52시간 이내라면 '밤샘'도 가능

대법 맞춰 고용부 해석 수정 검토

시대 맞는 노동유연성 확대 계기 속

노동계 "법정 근로시간 무색" 반발

22일 오전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두꺼운 옷을 입은 시민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22일 오전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두꺼운 옷을 입은 시민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근로기준법이 가진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준 판결입니다.”(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



대법원이 주52시간 근로제 위반을 주(週) 단위로 삼는 새로운 추가 판단 기준을 제시한 데 대한 대표적인 노동 학자의 논평이다. 대법원 판결은 제정된 후 70년 동안 유지해온 제조업 공장 시대의 근로기준법으로는 현재처럼 다양한 환경과 수요가 넘치는 일터를 제대로 규율하지 못한다는 점을 다시 입증했다는 것이다. 이는 법과 제도, 사회적 인식이 이번 대법원 판결과 같은 변화를 주도하기는커녕 뒤쫓지도 못할 경우 큰 혼란을 낳는다는 우려도 동시에 키운다.

25일 정부·학계·노동계 등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근로기준법·근로자퇴직급여법 위반 혐의 기소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내면서 주52시간제 위반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추가했다. 주 52시간은 법정 근로시간 주 40시간과 연장 근로시간 12시간으로 구성된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주 12시간 연장 근로시간의 해석을 기존보다 좁힌 것이다. 그동안 고용노동부와 법원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주 40시간 초과 근로시간이 12시간 연장 근로시간을 넘을 경우 또는 하루 8시간 초과 근로시간이 12시간을 넘을 경우 등 두 가지로 주52시간제 위반을 해석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두 가지 기준 중 ‘주 40시간 초과 근로시간 기준’만 인정했다.



이번 판결이 근로기준법의 한계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근로기준법 조항 자체의 한계 탓이다. 근로기준법상 연장 근로 법리는 크게 근로시간을 정의한 제50조, 연장 근로를 제한한 제53조, 연장 근로 수당을 정한 제56조로 이어진다. 그런데 제50조에서만 하루 법정 근로시간을 8시간으로 이내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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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와 현장은 이를 근거로 ‘하루 8시간 이상’도 연장 근로로 해석해온 것이다. 이와 달리 대법원은 53조와 56조에 없는 ‘하루 기준 연장 근로 해석’이 법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본 것이다. 박 원장은 “법에서 불명확했던 해석론을 명확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도 ‘근로기준법 조문만 보면 대법원의 해석이 타당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려는 이번처럼 대법원이 현행 법과 제도보다 빠른 변화를 만들 경우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하고 최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일례로 근로기준법에서 불명확했던 통상임금 문제도 결국 법원이 결론을 냈다.

일단 고용부는 대법원 판단에 맞춰 행정해석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고용부는 사업장의 주52시간제 위반을 수사하는 부처기 때문이다. 고용부의 행정해석과 대법원 판단이 혼재된다면 주52시간제 위반 판단도 뒤엉킬 상황이다. 다행히 이번 대법원 판결은 기존의 연장 근로 수당 지급 기준은 현행대로 인정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더 큰 우려는 앞으로 근로자의 근로시간 변화다. 이번 대법원 판단대로라면 하루 근로시간은 주 52시간만 넘지 않을 경우 사실상 제한(휴게시간 제외)이 없다. 이는 노동계에서 우려해온 근로시간 제도의 변화다. 한국노총은 이날 논평을 내고 “대법원 판결은 8시간을 법정 노동시간으로 정한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며 “현장에 자리 잡은 연장 근로 수당 산정 방식과도 배치돼 현장 혼란을 자초했다”고 비판했다.

학계에서는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근로기준법을 둘러싼 전반적인 법과 제도 정비에 서둘러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 개혁의 일환으로 임금·근로시간·노동법을 개선할 방침이다. 하지만 근로시간 유연화를 골자로 한 근로시간제 개편을 노사정(노동계·경영계·정부) 대화 테이블로 넘겼다. 정부가 노사의 근로시간 자율권을 높이는 동시에 장시간 근로에 따른 국민적인 불안감을 낮출 제도를 제시하지 못한 결과다.

경영계에서는 현재와 같은 경직적인 근로시간 제도를 그대로 두면 기업의 생산성 하락이 불가피하다며 답답해한다. 박사영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은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근로자는 더 많이 근로를 해야 할 상황”이라며 “국회의원이 입법적으로 불비된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하루 근로시간 상한, 최소 휴식시간 도입(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 등) 등 선진국의 근로자 건강권 보호 조치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근로시간 유연성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며 “대법원 판결은 유연근무시간제·자율근무시간제와 같은 미래 노동시장의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할 모티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세종=양종곤·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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