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전력사용권 웃돈 붙여 파는 얌체족까지 기승…신청 단계부터 '가수요' 차단

['전력 알박기' 막는다]

허술한 제도 탓에 67%가 '허수'

개인 1명이 28곳에 신청하기도

실수요자는 전력공급 기회 놓쳐

데이터센터 82%가 수도권 집중

알박기 못잡을땐 전력난 불가피

정부, 시행령 개정으로 수급 개선





정부가 5000㎾(킬로와트)를 넘는 대용량 전력의 전기사용예정통지 단계에서 실수요자 여부를 확인하기로 한 것은 허수 신청을 걸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간 대규모 전력 수요자에 대한 전기 사용 신청 절차가 지나칠 만큼 허술하게 운영됐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전기 사용자가 실수요자인지를 확인하는 단계가 생략되다 보니 일단 신청부터 하는 풍조가 만연했고 그 결과 수도권 등 특정 장소에 전력 선점 경쟁이 과열됐다. 결과적으로 실수요자가 전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미스매칭 문제, 전력 사용권만 확보한 뒤 권리를 되팔아 차익을 얻는 얌체족이 등장한 것은 불완전한 제도의 산물이었다. 특히 올 7월 한국전력의 감사를 통해 이런 실태가 확인된 것이 정부의 대책 마련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대책의 핵심은 데이터센터와 같이 5000㎾ 이상 전력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라면 ‘전기사용예정통지’ 단계에서부터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토지나 건축물 소유자의 동의를 받도록 한 것이다. 대규모 전기를 사용하려는 수요자는 이 통지서에 토지·건축물 소유자의 서명 또는 날인을 받아 관련 전력 회사에 제출해야 한다. 동의를 받지 않은 경우 전기 공급자가 전기 공급을 거부할 수 있다.



기존에는 이런 서명 절차 등 신청자에 대한 최소한의 실수요자 확인 과정이 없다 보니 전기 사용 확보는 사실상 선착순과 다를 바 없었다는 지적이다. 대용량 전력을 필요로 하는 고객의 편의를 위해 수요자가 실제 사용 시점보다 앞서 한전에 전기사용예정통지를 하고 전력 공급 가능 여부를 확인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현실에서 많았다는 의미다. 특히 허수의 수요자가 전력 공급권을 선점해버리면 실수요자는 전력 공급 기회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수도권과 같이 전력 수요가 몰리는 곳에서는 전력을 확보하는 게 지상 과제처럼 되다 보니 전력 공급부터 먼저 신청하는 등 일종의 가수요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개정을 통해 실수요자를 거르는 데 행정력이 낭비되는 부작용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한전의 데이터센터 전기 공급 실태 특별 감사 결과를 보면 관련 문제가 심각했음이 잘 드러난다. 전기사용예정통지의 67.7%(2020년 1월~올 2월 접수)가 허수 고객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 가운데는 한 개의 주소에 6명의 고객이 신청한 사례, 한 명의 고객이 28군데의 주소에 무작위로 신청을 남발한 사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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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전기사용예정통지를 빠르게 신청하고 이후 이 권리를 되팔아 차익을 얻는 얌체족까지 등장했다. 한전으로부터 전력 공급 승인을 받은 뒤 1년이 경과했는데도 전기 사용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사례는 33건에 달했다. 한전과 협의해 전기 사용 계약서에 명시한 전기 사용일이 6개월 이상 경과됐는데도 전력을 공급받기 위한 고객 설비가 시공 완료되지 않은 사례도 3건 있었다. 이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도 실수요 목적이 아닌 사업자의 전기사용예정통지를 제한해야 한다는 한전의 절차 개정 요청에 공감했다는 설명이다.

산업부는 앞으로 가장 첫 단계인 전기사용예정통지 단계에서 실수요자 여부를 걸러 허수 수요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전력 먹는 하마’인 데이터센터가 이미 들어섰거나 앞으로 들어설 입지를 보면 전체 732개(2029년 기준) 가운데 82.1%인 601개가 수도권이다. 데이터센터 10개 중 8개 남짓이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 자리한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 알박기 수요를 제거하지 못하면 전력 수급에 큰 지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부가 해가 바뀌기 전에 관련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전기 사용 신청 절차에 메스를 댄 이유다.

전기를 만드는 발전 공기업을 비롯해 수요 업체인 기업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에너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기 사용 신청 제도를 악용한 부동산 업자 등 개인이 많았다는 점에서 제도 개선이 시급했다”며 “에너지 수급 문제를 완화하는 데 (이번 제도 개선이)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신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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