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는 흥겨운 연말 축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도런스 댄스’ 무용단의 짤막한 탭댄스 공연 영상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했다. 백악관이 제작한 비디오는 듀크 엘링턴과 빌리 스트레이혼이 재즈로 편곡한 ‘호두까기 인형’ 배경음악에 맞춰 도런스 댄스 무용수들이 이스트윙(백악관 공간)에서 펼친 경쾌한 탭댄스를 보여준다.
공연 비디오는 시종 건전하고 발랄한 생기를 뿜어낸다. 도런스 댄스의 오랜 광팬인 필자는 2분짜리 동영상을 수없이 돌려보며 댄스광인 친구들과 칭찬 릴레이를 이어갔다. 하지만 모든 시청자들이 열광한 것은 아니다. 우익 ‘미디어 우주’에서는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일부 유색 무용수들이 등장하는 G등급(전체 관람가) 공연을 두고 폭스뉴스의 방송진행자인 로라 잉그러햄은 “미국의 전통과 연결된 모든 것을 극좌파의 눈을 통해 재해석하고 재창조해야만 하느냐”고 반문한 후 “무용단의 공연은 미국인 전체를 향해 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도런스 무용단의 호두까기 인형이 기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원작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가 만든 고전발레의 플롯은 이보다 훨씬 기이하다. 오리지널 호두까기 인형 발레극에는 마법에 걸린 인형들과 누더기 옷을 걸치고 커다란 스커트 아래 어린이들을 숨긴 장대한 남성, 캔디 복장을 한 러시아 코사크인들과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무시무시한 쥐가 등장한다. 한마디로 환각제에 취한 듯한 몽환 여행에 가깝다.
여기서 짚어봐야 할 점은 보수반동주의자들이 호두까기 인형의 도런스 무용단 버전을 물고 늘어지는 진짜 이유다. 놀랍게도 이들 중 일부는 탭댄스 공연에 흑인 무용수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대다수는 인종차별 철폐 투쟁을 격려하고 흑인 아티스트를 띄우는 내용으로 도배된 무용단 웹사이트에 반감을 보인다.
도런스 댄스 창립자인 미셸 도런스는 웹사이트에 올린 인사말에서 “흑인 문화의 기념비이자 조직적인 인종주의와 백인우월주의에 맞선 끝없는 투쟁사인 동시에 백인들에 의한 문화 도용의 시초인 탭댄스의 역사를 바로 알리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이라고 강조한다. 대다수 독자들의 짐작과 달리 도런스는 백인 여성이다.
이쯤 되면 폭스뉴스 진행자들과 댄스를 속없는 비정치적 여흥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 도런스의 선언은 다소 과격하게 들릴 만하다. 사실 탭은 이 나라의 굴곡진 인종주의 역사를 반영하는 독특한 미국 문화다. 사학자들은 탭댄스의 기원을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들 및 그들의 후손과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이 조우했던 시기에서 찾는다. 현대 탭댄스는 자발적 이민과 강요된 이주를 통해 형성된 두 인종 그룹의 확연히 다른 전통에서 나왔다. 이들은 리드미컬한 댄스를 여흥과 저항의 도구로 사용했다.
이 같은 배경에도 불구하고 탭은 브로드웨이 연극과 뮤지컬, 흑백 분리 시기의 할리우드 영화 등을 거치며 변이를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무대를 독식한 백인 아티스트들은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탭은 고통과 불의 속에서 자란 대표적 예술 형태이고 탭의 원조인 흑인 댄서들에게 주어진 대가 역시 불의와 고통이다.
도런스는 심지어 오늘날에도 전설적인 탭댄서였던 다이앤 워커 등 이 방면의 숱한 흑인 선구자보다 이들의 어깨를 딛고 선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말한다. 이 같은 자각이 자신의 탭댄스 창작극인 호두까기 인형에 도런스가 의도적으로 ‘포용의 정신’을 불어넣은 이유다. 도런스는 필자에게 보낸 e메일을 통해 “나는 (흑인들의) 저항과 자기표현의 예술적 산물인 탭댄스가 즐거움과 사회 변화를 가져올 강력한 운송 수단임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매혹적인 백악관 연말 축제 비디오를 둘러싼 우익의 문화적 우려가 완전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닌 셈이다. 일반적으로 탭은 겉보기와 달리 반체제적인 속성을 지닌다. 특히 백악관이 진행한 올해 연말 공연의 특징은 흑인 안무가가 공동으로 창작하고 해석한 작품을 흑인 디아스포라에서 탄생한 예술적 매개물을 이용해 흑인 노예들에 의해 지어진 글로벌 파워의 본거지에서 흑인 댄서들이 연출했다는 점이다. 이보다 더욱 미국적인 성탄절 스토리도 드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