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김재천 칼럼]2024년은 국제질서의 ‘티핑 포인트’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中·러·이란등 수정주의 진영 도전에

美의 자유주의 진영 주도 의지 안보여

트럼프 백악관 재입성땐 의문 더 키워

패권 기회 노리는 中 등 반격 거세질 것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의 국제질서를 ‘자유주의 국제질서(LIO)’ 또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RBIO)’라고 한다. 이러한 국제질서의 요체가 무엇인지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미국이 주도적으로 창출하고 관리해온 질서임은 분명하다. 국내외적으로 자유·민주·인권이 존중받고 법치가 준수되며 개방된 항로와 이를 통한 교역이 보장된 질서로 이해하면 된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작은 변화들이 발생해 축적되다가 갑자기 엄청난 변화로 확산할 수 있는 시점을 일컫는 표현이다. 2024년은 이러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티핑 포인트가 될 수 있는 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모순도 많았다. 미국부터 국제법을 무시한 적이 많다. 비근한 예로 미국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은 2016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을 무시한다며 중국을 비난하지만 정작 남중국해 해양 질서의 국제법적 근거인 유엔해양법협약(UNCLOS) 비준을 거부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거센 도전이 종주국 미국 내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모순된 상황이기도 하다.



그래도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인류 보편적 가치가 된 자유·민주·인권·법치를 지향하고 인류에게 역사상 가장 큰 번영을 가져다줬기에 지속될 수 있었다. 자유주의 질서가 존속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미국의 힘과 의지였다. 미국의 힘과 의지가 있었기에 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소련 공산주의 진영의 거센 도전을 막아낼 수 있었다. 탈냉전기에도 미국은 국제 지도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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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냉전 초기 미국 정부의 전략 문서들을 살펴보면 미국이 국제 지도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유럽·중동·아시아 3곳의 핵심 지역에서 패권 국가 출몰을 예방해야 한다고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탈냉전기 전략은 어느 정도 유효했다. 유럽에서는 러시아, 중동에서는 이란의 패권국 부상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한 미국은 중국의 패권 도전을 막기 위해 아시아로 회귀(pivot)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2022년 2월 러시아가 백주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무력으로 국경선을 변경할 수 없다는 국제법과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우크라이나가 선전했지만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피로감이 쌓이고 러시아에 전황이 유리해지면서 2024년 러시아의 승리를 예측하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스라엘과 수니파 아랍 국가들의 화해를 중재해 이란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에도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이스라엘 대 아랍의 갈등으로 진화할 수 있고 이란은 뒤에서 이러한 상황을 조장하며 즐기고 있다. 유럽과 중동의 두 전쟁은 미국의 아시아 회귀를 방해하고 있다. 중국에는 기회다. 미국의 압박과 경제위기로 잠시 위축됐던 중국의 도전 역시 2024년 더 거세질 것이다.

유럽·중동·아시아 세 지역의 전선은 다 연계돼 있다. 모두 기존의 자유주의 질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이를 수정해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다시 쓰려는 수정주의 국가 진영과 이에 맞서 현상을 유지하려는 자유주의국가 진영의 싸움으로 이해해야 한다. 실제로 중국·러시아·이란은 상부상조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한계 없는 우정’을 과시하고 있고 친이스라엘 성향을 보이던 러시아가 하마스에 우호적인 성명을 내고 있다. 수정주의 진영에는 북한도 적극적으로 가담해 앞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은 이제 한반도 문제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그리고 대만 문제에도 논평을 내며 개입하고 있다. 북한판 글로벌 중추 국가 외교라고나 할까.

수정주의 진영의 거센 도전에 맞서 자유주의 진영이 응전하려면 미국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미국은 여전히 그럴 힘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재입성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 어쩌면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가장 큰 도전은 해외에서가 아니라 미국 내부에서 발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024년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티핑 포인트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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