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부터 투자자가 증권사 계좌에 예치해놓은 현금인 예탁금에 대해 지급하는 이자격인 ‘투자자예탁금 이용료율’ 공시가 보다 세분화된다. 그간 과도하게 낮은 이용료를 적용해 이자 장사라는 비판을 받은 데 따른 조치다. 일부 증권사들이 100% 이상 인상률을 적용한 가운데 52조 원에 달하는 예탁금에 지급하는 이용료율 인상이 업계 전반으로 이어질 지 주목된다.
금융감독원은 내년 1월부터 증권사의 예탁금 이용료율 관련 비교 공시가 한층 강화된다고 26일 밝혔다. 투자자 예탁금이란 일반적으로 투자자의 증권계좌에 남아있는 현금으로 추후 증권매입 등에 사용할 수 있는 대기성 자금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21일 기준 투자자 예탁금(장내파생상품 거래예수금 제외) 잔액은 51조 8624억 원에 달한다.
증권사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투자자예탁금을 증권금융에 예치해야 하며 증권금융이 해당 자금을 운용하고 얻은 수익을 증권사에게 지급한다. 증권사는 이중 직·간접 제반비용 등을 차감한 나머지를 투자자에게 지급하는데 이를 투자자예탁금 이용료라 일컫는다. 은행과 비교하면 수시입출금식 통장의 이자와 비슷한 개념이다.
그동안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예탁금 이용료율이 지나치게 낮다는 비판이 이어져왔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30곳이 2019~2022년 사이 예탁금으로 올린 수익은 2조 4670억 원인 데 반해 같은 기간 증권사가 투자자에게 지급한 이자는 전체 이익의 약 24%인 5976억 원에 그쳤다. 9월 말 기준 상위 10개 증권사의 예탁금 이용료율은 평균 0.56%로 2년 전 대비 0.43%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기준금리는 0.75%에서 3.5%로 2.75%포인트 오른 걸 감안하면 매우 적은 수준이다.
이에 금감원은 올 들어 합리적 이용료율 산정을 위해 금융투자협회, 주요 증권사 등과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지난 10월 ‘투자자예탁금 산정 모범규준’을 제정했다. 증권사는 예탁금 이용료율 산정결과를 금투협회에 보고하고 금투협회는 증권사별 예탁금 이용료율을 내년 초부터 공시할 계획이다.
과거와 가장 큰 차이점은 증권사별 투자자예탁금 종류·금액별로 체계적으로 공시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증권사별 이용료율 차이를 비교할 수 있도록 위탁자와 집합투자증권투자자, 장내파생상품거래 등 예탁금 종류에 따라 나눠 공시하고 금액도 30만 원, 50만 원, 100만 원 등 세분화해 표기토록 했다.
투자자예탁금 이용료율 추이와 증권사 운용수익률 등도 추가로 공시한다. 현재 공시시스템에는 증권사의 투자자예탁금 이용료율 추이, 증권사가 투자자예탁금을 운용해 얻은 수익률 등이 공시되지 않고 있다. 이밖에 공시시스템에 ‘자주 묻는 말’(FAQ)을 신설해 예탁금 이용료에 대한 투자자 이해를 높이겠다고 덧붙였다.
일부 증권사들은 예탁금 이용료율을 인상하고 나섰다. 키움증권이 지난 10월 0.25%대에서 1.05%대로 대폭 인상했고 상상인증권(0.1→1.05%), KR투자증권(0.25→1.0%) 등도 인상행렬에 동참했다.
대형사들도 인상을 적극 검토 중이다. 삼성증권은 오는 29일부터 예탁금 평균잔액 50만 원 이상에 대해 종전 0.4%에서 1.0%로 150% 인상을 결정했다. 미래에셋증권 역시 3개월 평잔 100만 원 이하는 2.0%, 100만 원 초과 0.75%로 인상했고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 등 여타 대형사들도 1%대로 인상을 검토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중소형사뿐 아니라 대형사들도 100% 이상씩 인상하는 등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증권사의 자율적인 예탁금 이용료율 경쟁이 촉진돼 투자자 선택권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