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눈] 아파트 절반이 '소방법 사각지대'

박우인 사회부 기자





“집 안에 완강기나 다른 소방 설비를 본 적이 없어요.”

성탄절 새벽에 화재로 2명이 사망하고 30명이 다친 서울 도봉구의 A아파트에 사는 한 주민은 30대 아버지가 7개월 된 딸을 안고 4층에서 몸을 내던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불이 났을 때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벌어주는 기본 소방 장비인 스프링클러 역시 이 아파트 16층 이하에는 없었다. 불법은 아니었더라도 사고가 난 아파트는 2001년 완공된 노후 건물로 주민의 안전을 최소한으로 지켜줄 ‘생명 장치’ 설치에 소홀했다. 2004년 소방법이 개정된 후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고 완강기 설치 규정 역시 2005년 만들어졌다. 이 아파트는 화재 안전시설 설치 의무 규정 없이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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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아파트 10가구 중 6가구가량이 입주 20년 이상된 노후 아파트로 소방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10월 1일 기준 서울에서 입주 20년이 넘은 아파트는 모두 100만 2684가구로 전체 167만 3843가구의 59.9%에 달했다. 전국으로 시야를 넓혀도 52.12%가 노후 아파트다.

노후 아파트 화재 안전 문제는 오늘 어제의 일이 아니다. 9월 23일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일가족 3명이 숨지거나 크게 다친 사건도 스프링클러 등 기본적인 소방 설비 부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해당 아파트 역시 1990년대에 지어져 화재 안전시설 설치 의무 규정이 소급 적용되지 않았다.

참사가 거듭되고 있지만 안전보다 관리비 인상 등 경제적 논리가 앞서면서 노후 아파트 화재 안전시설 의무화 시도는 번번히 무산됐다. 하지만 소방 장비 설치는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첨병’이라는 점에서 안전 못지않게 경제적 측면에서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실제 경기소방재난본부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최근 5년간 발생한 화재 사고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소화 설비가 작동해 9조 8000억 원의 재산 피해를 줄였다는 분석도 있다. 비단 돈 문제를 떠나 아파트 안전 관리는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바닥으로 몸을 내던질 수밖에 없는 비극이 또 일어나서는 안 된다.

박우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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