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역사속 하루] 키신저의 중국 방문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학과 교수






외교계의 논란 많은 거물이자 미국과 중국의 외교 관계 회복에 기틀을 마련했던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2023년 11월 29일 향년 10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오직 국익만이 존재할 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국제 관계에서 ‘현실주의’를 표방하던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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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보다 현실적 이해관계를 중시했던 키신저는 1971년 7월 9일 미국 최고위급 인사 중에서는 최초로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을 극비 방문했다. 1971년까지 미국은 베이징을 중국의 수도로 인정하지 않았다. 주중국 미국 대사는 타이베이에 파견됐고 주미 중국 대사는 타이완을 대표하고 있었다. 따라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앞서 미국을 대표해 베이징을 방문하는 키신저 일행은 사이공·방콕·뉴델리, 그리고 파키스탄의 도시 라왈핀디를 거쳐 파키스탄 대통령의 전용기를 타고 극비리에 베이징에 도착했다. 블라인드를 친 기다란 중국산 리무진은 키신저를 태워 댜오위타이의 국빈관으로 안내했다.

키신저를 맞은 중국 측 대표는 40년간 마오쩌둥의 참모로 일하며 22년 동안 총리직을 수행하던 저우언라이였다. 긴장을 깨고 22년간 끊어진 양국 관계에 대화의 물꼬가 터진 것은 키신저 못지않게 저우언라이 역시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이었다. 저우언라이를 만난 키신저는 그를 이렇게 묘사했다. “마오쩌둥은 스스로를 철학자로 생각했고, 저우언라이는 자신의 역할이 관리 혹은 협상이라고 봤다. 마오쩌둥은 역사에 가속 페달을 밟으려고 안달이었지만 저우언라이는 역사의 흐름을 이용하는 데 만족했다.”(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 키신저와 저우언라이의 회담을 계기로 6·25 전쟁 이래 적대 관계에 놓여 있던 미국과 중국은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1979년 미중 수교에 이르는 상호 관계를 구축하며 데탕트 분위기를 조성하게 됐다. 국제분쟁이 잦아지는 요즈음, 백성들의 삶과 이익을 위해 철학과 이념을 조율할 줄 아는 지도자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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