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미국 은행들이 고금리 속 채권 손실을 막대하게 입으면서 잇따라 파산하고 예금자들이 이탈하는 홍역을 치렀지만, 업계 1위 JP모건체이스만은 매우 좋은 성과를 거뒀다. 다들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자본력을 바탕으로 파산한 경쟁사를 인수하는가 하면 불안한 예금자들이 대형은행으로 몰리는 흐름을 타고 성장을 거듭했다. 그 결과 시가총액이 미국 내 2·3위 은행을 합친 것보다 훨씬 높아진 수준에 이르렀다.
블룸버그통신은 27일(현지 시간) JP모건의 시가총액이 이날 종가 기준 4852억 달러(약 624조 원)로 미국 은행 업계 1위라고 전했다. 2위인 뱅크오브아메리카, 3위인 씨티그룹의 시총이 각각 2659억 달러, 977억 달러인데 둘을 합한 것보다도 JP모건 시총이 1216억 달러나 많다. 통신은 “JP모건 주가가 올 한 해 26% 상승한 반면 24개 은행주로 구성된 KBW 은행 지수는 연초대비 하락세”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주가 상승세는 탄탄한 실적 덕분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를 보면 JP모건이 올 1~3분기 거둔 수익은 389억 달러로, 미국 전체 은행권 수익의 18%에 달한다. 약 5분의 1에 육박하는 비중으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이후 가장 높다. 3개 분기 동안 수익만으로도 연간 기준으로 역대 2위에 해당하며, 연말까지 거둘 최종 순이익은 역대 최고로 전망된다. 제프리스의 켄 우스딘 은행부문 리서치 책임자는 “가장 규모가 큰 기업이 가장 높은 자기자본 수익률을 달성했다는 게 인상적”이라고 분석했다.
마이크 마요 웰스파고 분석가는 “JP모건은 골리앗 중의 골리앗”이라고 말했다. 올해 미국 은행업계는 지역 은행들이 파산하고 예금자가 이탈했을 뿐 아니라 상업용부동산(CRE) 시장에서도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아지면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JP모건은 이 같은 위기를 대형은행으로서 더 성장할 기회로 삼았다는 게 월가 전문가들의 공통적 분석이다.
미국 은행들은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을 시작으로 위기를 겪은 반면 JP모건은 이 기간 동안 예금을 500억 달러나 늘렸다. 불안해진 예금주들이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JP모건의 순이자마진(NIM) 기대치가 1년 만에 4배 상승했다.
또한 JP모건은 파산한 퍼스트리퍼블릭을 가장 높은 인수가를 제시하며 인수하기도 했다. FT는 “금융위기 당시 베어스턴스와 워싱턴뮤추얼 등을 인수하며 경쟁사들을 앞지르던 행보를 연상케 한다”고 짚었다. JP모건 이사회에서 33년간 근무한 석유업계 베테랑 리 레이먼드는 “기업 상황이 어려워지면 다른 은행들은 인수하고 싶어도 그럴만한 상황이 못 되지만, JP모건 같은 곳에는 그런 기회가 생긴다”며 “다른 은행들은 어느 정도 불만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