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거장 감독 자파르 파나히는 자국의 압제와 억압에 항거하는 작품을 만들어 왔다. 케이크 속에 숨겨 칸 영화제로 보낸 영화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와 끝까지 영화를 제작해 폭정에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택시’는 전 세계에 큰 울림을 줬다.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 ‘노 베어스’는 영화를 통해 현실을 고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저항 속에서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희생에 대한 윤리적 고뇌까지 다룬다. 영화는 실제로 20년 간 출국 금지와 영화제작 금지를 선고받은 파나히 감독이 직접 출연해 이 작품이 자전적 작품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란에서 출국 금지를 당한 파나히 감독은 튀르키예와의 국경 마을에 머무르며 원격으로 영화 촬영을 진행한다. 영화 속에는 튀르키예에서 프랑스로 망명하려는 커플이 등장하고, 국경 마을에서도 마을의 관습에 저항해 튀르키예로 사랑의 도피를 하려는 커플이 등장한다. 영화는 파나히 감독의 시선과 카메라를 통해 구시대의 악습을 폭로해 나간다.
파나히 감독은 극중극의 형태를 취하면서 동시에 이 또한 흩어 놓아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없앤다. 영화 속에서 만들어지는 작품 속의 인물들도 그 경계를 자유로이 벗어난다. 즉 작품 속의 폭력과 아픔은 작품 밖 실제와 그대로 연결된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격언이 있다. 아무리 큰 억압이 있더라도 결국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 격언은 닭이 희생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볼 수도 있다. 파나히 감독은 작품을 만들며 이 점을 여실히 느낀 듯 하다. 조국 이란의 민주화와 반체제 운동 속 일어나는 희생과 상처를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이번 작품의 결말부에서는 이에 대한 감독의 윤리적 고뇌가 그대로 드러난다.
작품 속에서 곰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옥죄는 두려움의 상징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영화를 본 뒤 다시 생각해보면 과연 곰이 그것 뿐인가 하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 영화의 제목 ‘노 베어스’가 역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영화는 2022년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 파나히 감독은 수감 중 수상 소식을 들었다. 10일 개봉. 10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