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英, 올 0%대 성장 예고에 감세…“韓 상속세 60%는 기업 죽이기”

[2024 신년기획-결단의 해, 막 오른 경제전쟁]

<4>'상속세 원조' 英도 폐지 수순-저성장 극복

英국민 '상속세, 최악의 세금' 꼽아

英싱크탱크 "주식 물납받은 韓정부

넥슨 2대주주로 올라선 것은 끔찍

기업가치 해치고 지분 제값 못받아"

자산가치 상승에 대상·금액 느는데

韓세율·과세표준은 24년째 제자리

영국 런던에 위치한 영국 재무부(HM Treasury) 전경. 영국 정부는 경제 활력을 높이기 위해 상속세 폐지를 꺼내 들었다. 런던=이준형 기자영국 런던에 위치한 영국 재무부(HM Treasury) 전경. 영국 정부는 경제 활력을 높이기 위해 상속세 폐지를 꺼내 들었다. 런던=이준형 기자






영국은 상속세 원조국이다. 18세기 후반 근대적 의미의 상속세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도입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 직후 부의 양극화를 줄이려는 조치였다. 이후 영국의 상속세 제도는 200년 넘게 유지됐다. 현재 영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40%로 미국(40%)과 같고 한국(50%), 일본(55%)보다 낮다.



이런 영국이 상속세 제도의 존속 자체를 고민하고 있다. 리시 수낵 총리가 이끄는 영국 보수당 정부는 3월 발표할 예산안에 상속세의 단계적 폐지 등 감세안을 넣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올 하반기로 예상되는 영국 총선을 앞두고 야당인 노동당에 지지율이 밀리자 표심 관리에 나선 것이다. 이는 곧 상속세 폐지에 대한 긍정 여론이 부정 여론보다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근 경기 침체도 한몫했다. 영국은 2020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이후 주요 7개국(G7) 중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0.5%·국제통화기금 기준)에 이어 올해(0.6%)도 0%대 성장률이 예고됐을 정도다. 영국 노동당의 레이철 리브스 의원은 이를 두고 “세계 무대에서 영국이 얼마나 뒤져 있는지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집권당인 보수당 지지율이 노동당에 15~20%포인트 뒤지는 것도 ‘저성장 늪’과 무관하지 않다. 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 특임교수는 “영국 경제는 향후 몇 년간 브렉시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며 “당분간 저성장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상속세 폐지’ 카드가 이런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까. 적어도 상속세는 영국에서 ‘국민이 가장 싫어하는 세금’으로 꼽힌다. 영국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가 지난해 하반기 영국인 2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1%는 상속세가 ‘부당하다’고 답했다. 소득세가 부당하다고 응답한 비율(33%)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또 다른 주요 세금인 부가가치세에 대한 부정적 응답 비율(34%)도 상속세(61%)의 절반가량에 불과했다.



상속세가 부당하다고 보는 주된 이유는 ‘이중과세’다. 구체적으로 상속세를 부당하다고 여긴 응답자 10명 중 4명(42%·복수 응답)은 그 이유로 ‘소득이 발생할 때 이미 과세함’을 꼽았다. ‘정부가 상속재산에 과세할 권리가 없다’고 응답한 비율도 17%에 달했다. 이어 ‘가족에게 재산을 남기기 위한 노력을 처벌하는 것(11%)’ ‘과세 기준이 물가 상승세를 따라오지 못함(10%)’ ‘세율이 지나치게 높음(9%)’ 순이었다. 2023년 12월 영국 런던에서 만난 데이비드 스터록 영국재정연구소(IFS)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영국에서 상속세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은 1980년대부터 제기됐다”며 “상속세가 이중과세라는 의견은 합리적인 지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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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웰 말로(왼쪽) 애덤스미스연구소(ASI) 연구디렉터와 에이먼 버틀러 ASI 소장. 런던=이준형 기자맥스웰 말로(왼쪽) 애덤스미스연구소(ASI) 연구디렉터와 에이먼 버틀러 ASI 소장. 런던=이준형 기자


상속세에 대한 부정 여론은 갈수록 커질 가능성이 높다. 가파른 자산가치 상승세로 상속세를 내야 하는 영국인도 덩달아 늘고 있어서다. 영국 재무부(HM Treasury)에 따르면 과세 연도 기준 2020~2021년 영국 사망자의 3.73%가 상속세를 냈다. IFS는 2032~2033년에 이 비율이 7%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스터록 이코노미스트는 “2032~2033년에는 영국인 8명 중 1명(12%)이 자신의 사망이나 배우자·동거인의 사망으로 상속세 과세 대상에 오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애덤스미스연구소(ASI)는 상속세를 폐지해도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실제 과세 연도 기준 2022~2023년 영국의 상속세 수입은 70억 9000만 파운드(약 11조 9000억 원)로 전체 세입(1조 170억 파운드·약 1706조 원)의 약 0.7%에 그쳤다. 에이먼 버틀러 ASI 소장은 “(상속세) 세율을 0%로 낮춰도 재정 타격은 사실상 없는 수준일 것”이라며 “상속세로 인한 사회적 비용 등을 고려하면 (상속세 폐지의) 실보다 득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한국의 상속세도 언급했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50%로 최대주주 할증 과세 적용 시 60%까지 치솟는다. 맥스웰 말로 ASI 연구디렉터는 “(상속세율) 60%는 사실상 도둑질”이라며 “‘기업 죽이기’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버틀러 소장은 한국 정부가 상속세로 주식을 물납받아 국내 최대 게임 업체 넥슨의 2대 주주로 올라선 것을 두고 “끔찍하다(horrible)”고 말했다. 버틀러 소장은 “(넥슨 같은 사례는) 회사의 핵심 가치를 해칠 수 있다”며 “정부가 가진 지분을 매각하려고 해도 제값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실제 정부는 지난해 말 넥슨 지주사 NXC의 지분 29.3%를 팔려고 내놓았지만 두 차례 연속 유찰됐다.

우리 정부가 상속세 개편의 필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상속세 세율과 과세표준은 2000년 이후 24년째 그대로다. 자산가치가 빠르게 오르며 상속세 과세 인원은 2018년 8002명에서 2022년 1만 5760명으로 최근 5년새 2배 가까이 늘었다. 정부는 지난해 태스크포스(TF)를 꾸리는 등 상속세 개편 작업에 시동을 걸었지만 올 4월 총선을 앞두고 ‘부자 감세’ 논란에 부딪혀 흐지부지된 상황이다.


런던=이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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