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4에 참석한 국내외 주요 기업 총수와 최고경영자(CEO)들이 ‘인공지능(AI) 일상화’를 올해 최우선 경영 전략으로 내걸었다. 각종 미래 핵심 기술이 집약된 CES에서 ‘전 분야의 AI화’를 직접 확인한 만큼 전방위적인 AI 도입에 서두르지 않으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AI가 인간의 감정이나 경험에 미칠 영향에 대한 깊은 철학적인 고민이 수반돼야 AI에 기반한 진정한 혁신이 이뤄질 수 있다는 진단도 이어졌다.
서울경제신문이 11일(현지 시간) 올해 CES를 방문한 국내외 주요 기업 총수·CEO 16명의 AI 관련 발언을 분석한 결과 이들은 ‘AI 일상화’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AI의 일상화는 AI가 가전과 유통 등 다양한 분야의 제품과 서비스에 접목돼 ‘초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AI 기술 패권 경쟁이 가속화하는 만큼 집중 투자의 필요성이 커졌다고 기업인들은 판단하고 있다.
단일 기업으로는 최대 규모의 전시장을 마련해 CES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삼성전자는 올해를 AI 도입 원년으로 삼고 모든 가전제품의 AI화를 사업 전략으로 제시했다.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고객이 매일 사용하는 핵심 기능을 중심으로 생성형 AI를 적용할 계획”이라면서 “AI가 접목된 스마트폰과 TV·가전, 자동차까지 연결된 사용자 경험은 보다 정교하게 개인화된 서비스로 발전해 고객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리 배리 베스트바이 CEO는 “아이러니하게도 AI가 기술에 대한 인간의 모든 경험을 더욱 인간적으로 느끼게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삼성전자가 공개한 가정용 AI 로봇 ‘볼리’에 대해 “좋은 아이디어”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가정은 물론 산업 현장에도 AI 확산이 예고되고 있다. 10일 기조연설자로 나선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은 “AI는 인류가 미래를 건설하는 근원적인 방식을 바꿀 것”이라며 모든 산업 솔루션에 AI를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박정원 두산 회장 또한 “AI 기술은 IT 기업들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며 “모든 사업에 AI를 도입하겠다”고 강조했다. 롤란트 부슈 지멘스 CEO는 “AI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허태수 GS 회장도 “AI 등 신기술 기반의 미래 사업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AI가 삶의 모든 영역으로 다가오면서 발전 속도가 가팔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AI 산업이 어느 정도의 임팩트와 속도로 갈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면서 “챗GPT가 출시된 지 1년 만에 기술적인 브레이크스루(돌파구)가 일어났다”고 진단했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AI의 발전은 끝없이 이어져 더욱 복잡하고 빠른 모델들이 나올 것”이라며 “속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라 마치 무어의 법칙이 탄생하던 초창기 PC 시대에 버금간다”고 짚었다.
가늠할 수 없는 AI의 ‘파괴적 혁신’을 위기로 인식하는 CEO들도 많았다. 구자은 LS 회장은 “AI와 로봇으로 무장한 미래가 얼마나 큰 비를 품고 얼마나 큰 바람을 몰고 올지 몰라 막연한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며 “AI가 가져올 장기적 폭풍에 대비해 가능한 사업 체계를 갖추겠다”고 다짐했다. 뷰티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CES 기조연설을 맡은 니콜라 이에로니무스 로레알 CEO는 “생성형 AI와 같은 파괴적인 기술이 업계의 비즈니스 모델을 흔들고 있다”고 말했다.
AI가 가져올 불확실성이 상당한 만큼 통찰력 있는 AI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AI를 인간과 공감하는 지능으로 재정의하고 싶다”면서 “AI를 위한 AI, 즉 기술 일변도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