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증시에 비트코인 현물 ETF가 상장됐지만, 우리나라 금융위원회는 내국인의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미국에서의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이 기정사실화된 지 이미 상당 기간이 흘렀는데도 뒤늦게 공식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금융당국의 이러한 의견 표명에 이전까지 제한이 없었던 국내 투자자의 비트코인 선물 ETF 투자까지 한때 중단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상자산이 이미 제도권 금융 시장에 빠르게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명확한 법적 근거도, 앞으로의 로드맵도 부재한 주먹구구식 규제다. 가상자산 시장에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해외 금융사 및 기업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이미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가상자산 시장의 봄('크립토 스프링')이 한국에서만 한없이 연기될 전망이다.
지난 12일 금융위원회가 내국인의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근거는 “비트코인 현물 ETF의 발행이나 해외 비트코인 현물 ETF 중개는 기존 정부 입장 및 자본시장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기존 정부 입장이란 지난 2017년 금융위가 내놓은 가상통화 관련 긴급 대책을 뜻한다. 당시 금융위는 금융기관의 가상통화 보유·매입·담보취득·지분투자를 금지한다는 방침을 내놨는데, 7년이 지났는데도 기존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한 셈이다.
업계에선 금융위 판단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금융위가 지침을 내놨던 7년 전과 달리 이제는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등장할 정도로 자산으로서 비트코인의 지위가 공고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난 2013년부터 비트코인 현물 ETF를 퇴짜놓왔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민간에서 합당한 인프라가 갖춰지자 입장을 바꿨다. 정석문 코빗 리서치 센터장은 “금융위의 입장이 아직 2017년도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아쉽다”면서 “한국 금융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당국이 더욱 넓은 시각에 기반해 판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스탠다드차타드(SC)는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되면 올해에만 최대 1000억 달러(약 131조 원)가 유입될 것으로 전망했다. ‘큰 장’이 열렸는데도 국내 증권사와 투자자는 손 놓고 구경만 해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금융위의 기존 입장에 법적 근거가 불명확하다는 점도 문제다. 국내 증권사들은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상장된 이후 곧바로 거래를 개시했다 중단하는 등 혼선을 겪었다. 기업이 참고해야 하는 확실한 법적 가이드라인이 부재하다는 방증이다. 권오훈 차앤권 법률사무소 파트너 변호사는 “미국 법과 한국 법이 동일하지는 않지만 국내 법률상 비트코인 현물 ETF를 금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면서 “증권사가 비트코인을 보유하지 못한다는 정부는 명확한 법적 근거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비트코인 현물 ETF의 긍정적 측면을 고려해 당국이 열린 시각으로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오태완 INF크립토랩 대표는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은 디지털 금융 소외계층이 비트코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로 기존에 중앙화된 가상자산 거래소나 탈중앙화거래소(DEX)를 이용하기 어려웠던 중·장년층도 비트코인에 손쉽게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게 된다는 뜻이다.
김규진 타이거 리서치 대표도 “비트코인 ETF는 금 ETF와 유사하게 일반 투자자가 복잡한 가상자산 구매·보관 과정 없이도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는 편리함을 제공할 것”이라면서 가상자산 ETF를 규제할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해외에서 조성된 비트코인 ETF에 국내 투자자가 직접 투자를 할 수 있게 할 것인지, 국내 증권 시장에서 별도로 가상자산 ETF를 조성할 것인지 등 세부 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센터장은 “고령화 이슈 등으로 인해 국내 경제 성장이 더욱 어려워진 상황에서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장려돼야 한다”면서 “시대 변화에 발맞춘 합리적 조치가 나오길 기대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