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소니혼다·MS 동맹, 빅파마는 M&A…韓기업 성장축 흔들린다

[AI 빅뱅, 카오스에 빠진 K기업]

<하> 갈림길 선 新산업 주도권

AI 등장 후 글로벌 산업 재편 활발

이종업종 결합 등 빠른 결단 필수

혼다·폭스바겐·BMW, 빅테크 협력

현대차, SW 강화에도 속도전 밀려

바이오도 빅파마와 격차 더 벌어져

조단위 M&A 결정할 리더십 절실

일본 가전 업체 소니와 자동차 회사 혼다가 합작해 만든 전기차 ‘아필라’.일본 가전 업체 소니와 자동차 회사 혼다가 합작해 만든 전기차 ‘아필라’.




“인공지능(AI) 혁명에 전율을 느꼈다.”



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의 ‘빅샷’인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4’에서 “AI는 와이파이 기술처럼 급속히 확산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의 예측대로 AI가 개인의 스마트폰과 PC·가전·자동차 등 모든 기기에서 곧바로 구현되는 ‘온디바이스 AI 시대’의 도래는 국내 기업들에 큰 도전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AI 혁명이 이전과 다른 양태와 속도로 글로벌 산업 질서를 뒤흔들면서 기업들에 생존을 위해서는 업종 간 경계를 허물고 어제의 적과도 동지가 되기를 강요하고 있어서다. CES 2024 현장을 둘러본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기존 수십 년간 해왔던 (사업) 모델을 버려야 하는 문제가 다가오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17일 “AI처럼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하면 기업을 둘러싼 경영 환경도 급변하기 마련”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시장의 변화를 읽고 이종 업종 간 결합이든 동종 업종 내 인수합병(M&A)이든 빠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오너 경영인의 역할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기업 간 합종연횡이나 M&A는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일본 가전 업체인 소니와 자동차 업체 혼다의 동맹은 AI 시대를 맞아 급변하는 환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생존을 위해 가전 업체와 자동차 회사는 물론 소프트웨어 회사들까지 영역을 파괴한 합종연횡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소니와 혼다는 2022년 전기차 합작법인인 ‘소니혼다모빌리티’를 세웠다. 소니혼다모빌리티는 2025년부터 전기차 ‘아필라’를 양산한다. 소니·혼다는 CES 2024에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와도 동맹을 맺었다. 전기차 아필라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에 탑재할 AI를 3사가 공동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이뿐 아니다. 폭스바겐은 음성 인식 기술 파트너사인 세렌스와 함께 챗GPT가 적용된 지능형 음성 비서 ‘아이다(IDA) 음성 어시스턴트’ 탑재 차량을 공개했다. BMW도 아마존과 함께 대규모언어모델(LLM) 기반의 생성형 AI를 탑재한 ‘BMW 지능형 개인 비서’를 선보였다. BMW는 올해 안에 BMW 오퍼레이팅 시스템 9가 탑재된 차량을 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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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기계 산업에서도 글로벌 선두 업체들은 수년 전부터 AI 시대를 대비한 이종 결합에 앞장서왔다. 건설기계 세계 2위 업체인 일본 고마쓰는 2015년 스마트 컨스트럭션에 AI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엔비디아와 손을 잡았다. 스마트 컨스트럭션은 굴착기 등 건설 장비가 조종사 없이 자동으로 작업하는 기술을 말한다. 설정된 궤적에 따라 숙련된 조종사 없이 작업이 가능해 사람의 접근이 어렵거나 위험도가 높은 현장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두산밥캣·HD현대 등 우리나라 기업들도 무인화·자율화를 위해 구글·아마존 등 다양한 IT 업계와 손잡고 있다. 다만 속도 면에서는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바이오 분야도 남다르다. 빅파마(대형 제약·바이오회사)는 끊임없는 M&A로 덩치를 키우고 있다. 지난해 화이자와 BMS·애브비·로슈 등 다국적 제약 회사들이 1년간 신약 개발 업체를 M&A한 거래 규모만 430억 달러(약 57조 원)에 이른다. 올 들어서도 보스턴사이언티픽·존슨앤드존슨·머크·노바티스 등 빅파마 4곳이 M&A한 거래액만 68억 달러(약 9조 원)다.

국내 기업도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투자 규모와 속도전에서 밀리고 있다. 2025년 모든 차량을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으로 내놓겠다고 밝힌 현대차그룹은 소프트웨어 개발 속도가 지연되자 정의선 회장이 직접 나서기도 했다. 정 회장은 올 들어 세 차례나 현대차·기아의 소프트웨어 개발이 늦다고 여러 자리에서 그룹 구성원에 재촉했다. 고급 인력도 부족하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이 2021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차량용 소프트웨어 인력은 2020년 기준 약 1000명으로 미국의 2만 8000명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래차 소프트웨어의 국산화율은 40%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은 “국내에는 전기차 시대에 대비할 AI나 소프트웨어 분야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미국이나 독일, 심지어 중국보다도 인력 양성이나 투자도 많이 늦어졌다”며 “현대차에서 글로벌상생협력센터(GPC)라는 기관까지 만들어 SDV 관련 인력을 직접 양성하기 시작한 것처럼 과감한 연구개발(R&D)과 투자로 산업의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오의 상황도 비슷하다. 격차는 더 벌어진다. 한국은 위탁개발생산(CDMO)에 강점을 갖고 있고 바이오시밀러도 경쟁력을 높여나가고 있지만 바이오베터와 신약 등 바이오 산업 전반에서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세계 바이오 시장 점유율도 1%대에 그친다. 업계 관계자는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 산업은 신약 개발 업체 하나를 인수하는 데 수조 원의 자금이 들지만 효과는 시차를 두고 발생한다”며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오너 경영인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말했다.

서민우 기자·유창욱 기자·노해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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