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기차 충전 스타트업이 잇따라 일본에 진출하고 있다. 전기차 보급이 북미·유럽보다 뒤처졌지만 일본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로 충전 인프라가 가파르게 확장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현지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충전기는 물론 충전 운영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며 빠르게 시장을 선점한다는 것이 스타트업들의 전략이다.
18일 전기차 충전 업계에 따르면 국내 1위 급속충전기 제조 스타트업인 대영채비는 지난해 11월 일본의 대형 무인 주차장 관리 업체인 재팬파킹메인터넌스(JPM)와 충전기 6000대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올해부터 도쿄·오사카 등 일본의 주요 도심 주차장에 대영채비의 급속충전기가 본격적으로 설치될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택시 회사인 MK택시에 제품을 공급한 바 있다.
대영채비는 2016년 창립 이후 국내에만 약 3만 대의 급속충전기를 설치하며 경쟁력을 입증했다. 정민교 대영채비 대표는 지난해 10월 윤석열 대통령의 중동 순방 당시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하며 사우디아라비아에 충전기 5000대를 수출하는 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국내 1위 완속충전기 제조 스타트업인 에바 또한 일본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 환경에 맞게 안전성·기능을 갖출 수 있도록 현지 제조업 지원 기업인 윌텍과 함께 충전기 실증 테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지난해 7월에는 일본 종합금융그룹인 오릭스로부터 투자 유치를 받기도 했다. 에바는 제품에 전기를 아끼는 전력 공유 기술을 탑재한 만큼 전기요금이 비싼 일본에서 승산이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이 밖에 정보기술(IT) 스타트업 스칼라데이터는 일본 충전기 제조사인 플라고와 손잡고 현지에서 전기차 충전 애플리케이션을 운영할 계획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본에서는 2014~2015년 우후죽순 설치됐던 노후 충전기의 교체가 시급한 상황”이라며 “초급속, 양방향 충전(V2G) 등 첨단기술로 무장한 국내 스타트업을 향한 일본 현지 기업의 러브콜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충전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보고 있다. 대기업의 잇따른 진출로 국내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GS그룹과 롯데그룹이 각각 차지비, 중앙제어를 인수한 게 대표적 사례다. 북미 시장 또한 SK시그넷·LG전자 등 대기업이 뛰어들고 있어 현지 공장 설립이 어려운 스타트업으로서는 한국과 가까운 아시아 시장 공략이 급선무라는 분석이다.
특히 일본이 전기차 충전 인프라 정책을 강화하면서 시장 성장이 가파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해 8월 2030년까지 전국에 충전기를 30만 대 확충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깔려 있는 약 3만 대의 10배인 데다 기존 목표치인 15만 대에서 2배나 상향한 수치다. 하이브리드차를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강력한 전기차 인프라 정책을 들고 나온 것이다. 강인철 플러그링크 대표는 “북미나 유럽에 비해 전기차 보급이 뒤늦은 일본에서는 경쟁력이 있는 충전 사업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한국 기업으로서는 현지 진출에 도전해볼 만하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