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사회로의 전환을 내건 현대자동차그룹이 수소 생산 거점 구축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수 슬러지를 활용해 수소에너지를 직접 생산하는 방식으로 국내에서는 이번 사업이 처음이다. 수소 생산부터 활용까지 모든 과정에서 선순환 구조를 마련하려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미래 비전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현대로템은 청정수소 생산 시설 구축을 위한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 현대로템은 지난해 말 현대차에서 실시한 사업자 입찰에서 낙찰자로 선정됐으며 현재 막바지 법률 검토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다음 달 계약이 성사될 경우 현대로템은 현대차 측에 바이오가스 정제 시설과 수소 추출기, 수소충전소 등 필수 시설을 공급하며 사업의 첫발을 떼게 된다. 사업 규모는 약 100억 원이다.
현대차는 충북 청주시 공공하수처리장 부지(면적 7500㎡)에 수소 생산 거점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유기성 폐기물인 하수 슬러지에서 발생한 메탄을 정제해 바이오가스로 만든 뒤 수소에너지로 자원화하는 것이다. 사업 부지 내 시설 공사는 인허가 절차를 거쳐 올 1분기 중 착수해 올해 말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이를 통해 하루 500㎏의 수소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는 수소 승용차인 넥쏘를 100대 충전할 수 있는 양이다. 추후 생산 시설을 증축해 2027년까지 수소 생산능력을 두 배가량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주변으로는 수소충전소를 함께 설치해 수소차 운전자에 저렴한 가격으로 수소를 공급한다.
현대차는 수소사회로의 대전환을 미래 청사진으로 제시하며 관련 사업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정 회장은 최근 막을 내린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4’에서 “수소는 저희 대가 아니고 후대를 위해 준비해놓는 것이 맞다”며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수소 생산과 저장·운송, 활용 등 모든 단계에서 성장을 견인하는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는 구상이다. 청정·무한한 수소에너지의 활용도를 높여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려는 비전을 담고 있다.
현대차는 이번 사업으로 수소 생산 기술을 고도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차가 추진 중인 자원 순환형 수소 생산 기술은 유기성 폐기물을 수소로 전환하는 ‘W2H(Waste to Hydrogen)’와 폐플라스틱을 수소로 전환하는 ‘P2H(Plastic to Hydrogen)’ 등 두 가지다. 청주 청정수소 생산 시설은 이 가운데 ‘W2H’ 기술을 처음으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하수 슬러지를 기반으로 수소를 생산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실제로 생산 시설을 구축하는 등의 성공 사례는 전무하다.
W2H 기술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수소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수소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지역에 생산 거점을 구축함으로써 수소 운반과 저장 등에 필요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음식물 쓰레기에서 뽑아낸 수소를 공급하는 충주 바이오충전소의 요금은 1㎏당 7700원으로 최대 1만 원에 달하는 서울의 일반 충전소 요금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수소에너지의 대량생산이 가능한 P2H 기술은 그룹 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을 통해 추진되고 있다.
이밖에도 현대차그룹은 수소사회 실현을 위해 연간 수소 소비량을 2023년 1만 3000톤에서 2035년 300만 톤으로 늘릴 계획이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넥쏘 후속 모델을 출시해 수소 승용차 시장에서 선두 입지를 강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