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빛과 그림자로 비춘 세상…100세 거장이 만든 마법

■후지시로 '오사카 파노라마展'

셀로판지·면도칼로 직접 제작

6m 초대형作 등 200점 한 곳에

'선녀와 나무꾼' 신작 12점도 공개

4월 7일까지 세종문화회관서 열려


일본어 ‘카게에’는 우리말로 ‘그림자 회화’로 번역한다. 먼저 밑그림을 그린 후 셀로판지를 붙이고 조명을 비춰 색감과 그림자로 표현하는 예술의 한 분야다. 어두운 공간 벽에 조명을 비추고 그림자로 연극을 하는 그림자극, 인형극의 한 장면을 회화로 만든 작품이 바로 카게에다. 카게에의 창시자는 후지시로 세이지다. 그는 1940년대 전쟁이 끝나고 비로소 평화와 고요함이 찾아온 폐허에서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카게에를 시작했다. 물감을 구할 수 없던 전쟁 직후 상황에서 빛과 그림자만 있으면 가능한 카게에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후지시로 세이지가 자신의 카게에 작품 200여 점을 들고 25일 한국을 찾았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26일부터 열리는 자신의 개인전 ‘오사카 파노라마’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1924년생이니 올해로 정확히 100세다.



서 있는 것도,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이는 고령의 나이였지만 그는 이날 “카게에는 빛을 통해 그리는 그림으로, 작품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느껴줬으면 한다"며 평생을 몰입한 카게에를 설명하기 위해 애썼다.

후지시로 세이지의 ‘요코테의 눈 축제’. 사진제공=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후지시로 세이지의 ‘요코테의 눈 축제’. 사진제공=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후지시로 세이지의 ‘월광의 소나타’. 사진제공=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후지시로 세이지의 ‘월광의 소나타’. 사진제공=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후지시로는 평화를 사랑한다. 일본의 패전 이후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비로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종전 후 영화배급사에서 일하던 그는 한 여성지에 카게에 연재를 시작했는데 그 때 지면으로 처음 세상에 실려 공개된 작품이 ‘완두콩 다섯 알’이다. 당시 그는 일본의 독립미술협회전 등 여러 대회에서 회화로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이때부터 상업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카게에 작품 활동에 전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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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후지시로 세이지의 ‘오사카 파노라마' 전시 모습. 사진=서지혜 기자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후지시로 세이지의 ‘오사카 파노라마' 전시 모습. 사진=서지혜 기자


이번 전시에서는 6m가 넘는 초대형 작품과, 작가의 초기 흑백 작품 등 200여 점의 작품이 설치된다. 특히 우리에게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원작으로 잘 알려진 ‘은하철도의 밤’의 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후지시로는 전쟁이 끝난 직후 미야자와의 작품을 토대로 한 그림자극을 1000회 이상 상연할 정도로 그의 작품에 큰 영감을 받았다. 작가 스스로 “나는 미야자와의 동화를 만나며 작가로서 눈을 떴다”고 말했을 정도다.

후지시로 세이지가 2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서지혜 기자후지시로 세이지가 2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서지혜 기자


또한 작가는 이번 전시를 앞두고 열흘에 걸쳐 한국의 설화 ‘선녀와 나무꾼’을 토대로 한 12점이 작품을 새로 제작하기도 했다. 작가는 30대였던 1958년 이 설화를 토대로 5점의 작품을 제작했는데, 이후 작품이 유실돼 이번 전시를 계기로 11점을 추가로 제작했다.

작가는 면도칼로 작품을 제작한다. 얇은 셀로판지를 갈로 도려내 손톱보다 작은 조각을 만들어 내는 일은 젊은이에게도 큰 체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올해로 한 세기의 삶을 맞이한 거장이 이토록 열정적으로 작업을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내가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사랑과 평화”라며 “이번 전시가 한·일 양국 간 관계가 조금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4월 7일까지.


서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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