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승인을 받고 방조제 공사를 시작한 1992년만 하더라도 새만금 간척지는 모두 100% 농업 용지로 개발하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식량 안보’를 걱정하던 시기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은 쌀 소비량이 예전보다 줄어들어 농지 확대의 필요성도 감소했습니다. 이에 기존 농업 용지를 산업 용지로 전환해 첨단산업체들이 더 많이 입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산업 용지를 늘리는 방향의 기본 개발계획(마스터플랜)을 재수립해 새만금이 국가 백년대계를 책임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단군 이래 최대 간척 사업으로 평가받는 새만금 개발 사업이 첫 착공에 들어간 지 올해로 33년을 맞는다. 전북 부안군과 군산시를 잇는 33.9㎞ 길이의 세계 최장의 방조제를 통해 토지(291㎢)와 담수호(118㎢) 등 409㎢의 땅을 새로 조성하는 이 초대형 프로젝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발 계획이 변경돼 부침을 겪기도 했다. 본래 식량 생산기지로 계획됐다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농지 비중이 줄어들었고 나머지 용지를 산업·관광·에너지 용도 등으로 개발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새만금은 또 한 번의 대개조를 준비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새만금을 찾아 “기업이 바글거리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한 후 10조 원 규모의 민간투자가 이뤄지자 새만금개발청은 추가 투자 유치를 위해 산업 용지 비중을 대폭 확대하는 것을 준비 중이다.
김경안 새만금개발청장은 2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새만금의 핵심 키워드는 ‘기업’”이라며 “글로벌 첨단산업의 퍼스트 무버로 거듭나도록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청장이 새만금에서 산업 용지를 늘리려는 것은 2차전지 제조 업체 등 첨단산업체들의 새만금 투자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의도의 141배에 달하는 새만금에서 그동안 산업 용지 비중은 미미했다. 1989년 노태우 정부는 농업 식량 생산기지를 만들기 위해 새만금을 100% 농지로 개발하기로 했지만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농지 비중을 72%로 줄였다. 이후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동북아 경제 중심지’를 앞세워 농지 비중을 30%까지 낮췄다. 이후 새만금 간척지의 농지 비중은 30%, 비농업 용지(산업·관광 용지 등)는 70% 수준으로 유지돼왔다. 하지만 김 청장은 산업 용지만을 20~30% 수준으로 대폭 늘려 첨단 기업 입주 수요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김 청장은 “현재 새만금에서 산업 용지 비중은 9.9%에 불과하며 도로 등 인프라를 빼면 실제로는 4%밖에 안 된다”며 “4% 수준인 산업 용지 비중을 두 자릿수로 늘리는 것을 마스터플랜에 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30%까지 늘린다고 해도 도로·공원 부지 등을 고려하면 실제 기업이 들어서는 토지는 20% 수준밖에 안 되는 만큼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게 김 청장의 판단이다. 그는 “내실 있는 기본 계획 수립을 위해 지난해 말부터 전문가 자문단을 운영해 새만금 사업에 대한 깊이 있는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며 “올해 전문 용역을 발주해 기본 계획 수립에 본격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청장의 이 같은 친기업 기조는 지난해 7월 취임 이후부터 줄곧 강조한 방침이다. 현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춰 새만금으로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였다. 새만금을 투자진흥지구로 지정해 입주 기업에 법인세(최고 3년 100%, 추가 2년 50%) 감면 혜택을 제공한 데 이어 지난해에 2차전지 특화단지로도 지정했다. 또 투자 유치부터 공장 가동까지 전 과정을 원스톱으로 지원해 기업이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면적으로, 원하는 시기에 입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같은 정책은 즉각 효과를 보고 있다. 2013년 9월 국토교통부 산하 새만금개발청 개청 이후 2021년까지 유치한 새만금 투자 규모는 1조 5000억 원 정도인데 윤석열 정부 들어서 지난해 말까지 기업의 투자 규모는 10조 원에 달한다. 지난 10년간 투자받은 금액보다 최근 1년 6개월 동안 유치한 금액이 6배 더 많다. 무엇보다 지난해 LS그룹이 새만금에 2차전지용 소재 공장 건설에 2조 2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점이 고무적이다. SK온과 LG화학도 각각 중국 거린메이(GEM), 화유코발트와 손잡고 1조 원가량을 투자해 새만금에 배터리용 전구체 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국내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의 러브콜이 빗발치고 있다. 새만금청에 따르면 개청 이후 10년간 유치한 외국계 기업은 7개인데 이 중 6개사를 지난해 한 해 동안 유치했다. 투자 유치 금액 10조 원 중 3조 5000억~4조 원 정도가 외국계 기업이 투입한 금액이다.
김 청장은 “2차전지 기업 두 곳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편의를 위해 개설된 도로를 폐쇄하고 용지 병합을 하는 ‘규제 혁파’를 적극 시행했다”며 “특히 새만금은 매립지라는 점 때문에 토지 소유자로부터 발생하는 민원이나 토지 보상으로부터 자유로워 기업들의 관심이 크다”고 설명했다. 저렴한 분양가, 빠른 인허가 절차도 기업들이 새만금으로 몰리는 이유다. 김 청장은 지난해 2차전지 관련 기업 유치가 두드러졌는데 앞으로는 미래 핵심 신사업인 수소 등 에너지 기업 및 글로벌 식품 가공, 유통 기업도 적극 새만금에 투자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새만금개발청은 항만·공항·철도 등 입주 기업들의 물류망을 구축할 ‘트라이포트’도 만들고 있다. 새만금을 십자로 연결하는 동서·남북도로가 지난해 완성됐고 5만 톤급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부두 2선 석을 갖춘 새만금 항만이 2026년 개항한다. 2040년까지는 9선 석으로 확충한다. 이 밖에 2029년에는 새만금 국제공항이 개항하고 2030년 KTX 익산역과 연결되는 철도까지 완성되면 새만금은 글로벌 물류·교통의 요충지로 거듭나게 된다. 김 청장은 “기업들의 물류와 기업인의 이동이 더 자유로워 질 것”이라며 “크루즈선 입항에 공항까지 들어선다고 하니 관광 업체들의 관심도 크다”고 말했다.
그는 챌린지 테마파크 및 수변 도시 조성 사업에도 속도를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새만금 1호 방조제 시점부에 들어서는 챌린지 테마파크는 총 1443억 원 규모의 민간 자본이 투입되며 지난해 말 기공식을 열고 첫 삽을 떴다. 숙박 시설 및 공연 시설과 대관람차 등 휴양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며 2027년 초 운영이 목표다. 이를 기반으로 세계적으로 특화된 ‘컨벤션 허브’를 조성한다는 게 김 청장의 계획이다.
새만금 제2권역 내 660만 ㎡ 부지에 들어서는 수변 도시는 새만금 내 ‘첫 도시’로서 주거·관광·산업이 결합된 자족 도시로 조성할 계획이다. 추정 거주 인구는 기업 종사자를 포함해 약 3만 명 정도다. 김 청장은 “올 하반기 건설사 등을 대상으로 주택 용지를 분양해 2027년에는 첫 입주가 시작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최근 한 관광 업체 대표가 수변 도시 부지에 관광특구를 지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등 투자 문의도 활발하다”고 전했다.
김 청장은 마지막으로 새만금 개발 사업 완공 연도를 앞당기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 새만금 사업은 총 4단계로 나누어 추진 중인 가운데 2020년까지 1단계 사업을 마쳤다. 2030년까지 78% 매립을 목표로 2단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3단계는 2040년 87%까지 개발하는 것이며 2050년에 사업 완료가 목표다. 새만금 사업이 최종적으로 끝나려면 아직 20여 년은 더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김 청장은 “전체 개발 면적 대비 48.5%가량 개발을 완료한 상태”라며 “2050년은 너무 길어 2040년 정도까지 사업 기간을 앞당기는 방안을 마스터플랜에 담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