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손흥민(토트넘)의 판단력은 120분 혈투를 벌인 뒤에도 냉철했다.
지난달 31일(이하 한국 시간) 클린스만호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치른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16강전은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경기였다. 후반 1분 만에 선제 실점한 한국은 후반 추가시간, 종료 휘슬이 울리기 1분여 전 조규성(미트윌란)의 천금 같은 결승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한 양 팀의 운명은 승부차기로 결정됐다. 주장 완장을 찬 손흥민은 센터서클로 가 사우디 선수와 함께 주심 앞에 섰다. 동전 던지기로 승부차기를 할 골대와 먼저 찰 팀을 정할 차례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작은 실랑이가 있었다.
1일 대표팀 관계자에 따르면 주심은 골대를 본부석 기준으로 왼쪽 골대에서 승부차기를 진행하겠다고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중계 카메라가 해당 골대 쪽에 이미 설치돼 있으니 편의상 그쪽에서 진행하자는 의도였다. 공교롭게도 그 골대 뒤편에는 ‘붉은악마’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손흥민이 곧바로 따졌다. 규정대로, 동전 던지기로 골대를 결정하자며 맞섰다. 규정대로 진행하자는 손흥민의 주장에 심판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동전 던지기를 한 결과 승부차기 장소는 한국 팬들이 조금이나마 있는 쪽 골대로 결정됐다. 그리고 한국 팬들의 응원 소리를 가까운 곳에서 들으며 골문을 지킨 조현우(울산)는 두 차례 ‘선방 쇼’를 펼쳤다.
첫 키커의 중책을 피하지 않은 손흥민, 그리고 뒤를 이어 페널티스폿에 선 3명 모두 붉은악마 앞에서 멋지게 슈팅에 성공하며 한국에 8강행 티켓을 안겨줬다.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도전의 첫 고비를 넘긴 태극전사들은 3일 새벽 0시 30분 카타르 알와크라의 알자눕 스타디움에서 호주를 상대로 8강전을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