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던 21대 국회의 임기가 이제 넉 달도 남지 않았다. 2020년 총선을 통해 180석의 압도적인 ‘여대야소’로 꾸려진 21대 국회는 시작부터 숱한 오명을 남겼다. 극한의 여야 대립 속에 파행을 거듭한 원 구성 협상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초로 여당이 모든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2022년 대선의 정권 교체로 국회 지형이 ‘여소야대’로 탈바꿈하면서 갈등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대화와 설득, 조정과 타협의 민주주의 작동 원리는 멈춰 섰다. 대신 상대 정당의 주장은 무조건 반대하는 ‘비토크라시(vetocracy·거부민주주의)’가 득세하면서 21대 국회는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하는 식물 국회로 전락했다.
21대 국회의 가장 부끄러운 장면 중 하나를 꼽자면 바로 ‘일하지 않는 국회’의 모습일 것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2일 기준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총 2만 5658건에 달하지만 지금까지 처리된 법안은 9319건에 불과하다. 법안 처리율이 40%를 훨씬 밑도는 셈이다. 여전히 1만 6000건이 넘는 법안들은 계류된 상태다.
여야가 정쟁에 매몰된 사이 처리가 시급한 민생 법안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지난달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되면서 83만 소상공인들이 범법자로 내몰릴 위기에 처했지만 2년 유예안은 거대 야당의 몽니에 가로막혔다. 최대 30조 원의 무기 수출 계약에 필수인 수출입은행법 개정안과 포화 상태에 다다른 사용 후 핵연료 저장 시설 설치를 위한 고준위 특별법 등 또 다른 민생 법안들도 본회의 문턱조차 오르지 못한 채 잠자고 있다. 반면 총선을 앞두고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지역 사업에 대해서는 여야가 찰떡 호흡을 자랑한다. 헌정 사상 최다인 261명이 공동 발의해 일사천리로 통과된 달빛철도 특별법은 예비 타당성 조사 없이도 9조 원 가까운 혈세가 투입되는 선례를 남겼다.
일하지 않는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따갑다. 지난해 10월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21대 국회가 받은 점수는 100점 만점에 42점에 불과했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주장에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찬성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21대 국회가 벼락치기를 해서라도 민생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고 ‘묻지마식’ 선심성 공약을 거둬들인다면 낙제점은 겨우 면할 수 있지 않을까. 국회에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