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조 바이든은 너무 늙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결국 선택은 둘 중 한 명입니다. 바이든을 뽑는 것이 우리에게 더 나은 선택입니다.”
1일(현지 시간)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를 뽑기 위한 민주당의 첫 번째 공식 경선(프라이머리)이 열리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 리치랜드카운티 선거 사무소 앞에는 사전투표를 하기 위해 흑인 유권자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딘 필립스 민주당 의원, 작가 메리앤 윌리엄슨 등 3명의 후보가 경쟁하지만 승부 자체보다는 바이든을 중심으로 민주당 유권자들이 얼마나 뭉치느냐가 관전 포인트다. 지난 대선 때 바이든에게 몰표를 줬던 유색인종의 지지세가 예전만 못하다는 여론조사가 잇따르면서 전통적 지지층의 결집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날 사전투표장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보내는 모습이었다. 앤드루 길리언(70) 씨는 “바이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도널드 트럼프는 광기에 가득 찬 사람”이라며 “흑인들이 바이든을 떠났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흑인 여성인 샌드라 스미스(58) 씨도 “대부분의 흑인들이 바이든을 지지할 것”이라며 “우리는 광기와 거짓말·속임수·도둑질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흑인 유권자가 많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는 바이든 대통령이 4년 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초반의 부진을 딛고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지역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48.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2위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19.8%)을 큰 차이로 제쳤고 이 기세를 몰아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본선에서 승리했다. 이번 경선에서는 뚜렷한 경쟁자가 없는 만큼 무난히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전체 투표율과 흑인 득표율 등이 바이든 대통령의 본선 경쟁력을 판가름할 주요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AP통신과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의 여론조사에서 흑인 성인의 50%만이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결과가 나올 정도로 바이든의 흑인 지지층에서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민주당의 경선 레이스가 본격 시작된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팔레스타인 주민을 공격한 이스라엘인을 제재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등 아랍계 유권자 표심 달래기에 나섰다. 이번 행정명령에 따라 미 국무부와 재무부는 서안에서 벌어진 민간인을 겨냥한 폭력 행위 등과 관련해 외국 국적자에 대한 제재 근거를 확보했으며 대상자인 4명의 이스라엘 정착민에게 미국 내 자산 동결과 미국 입국 금지 등의 조치를 내렸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반발에도 행정명령을 발동한 것은 가자지구에 대한 고강도 공격을 이어가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경고이자 미국 내 진보층 및 아랍계의 반발을 의식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이 장기화하면서 미국의 이스라엘 정책이 편향됐다는 비판이 일었고 아랍계는 물론 유색인종과 진보층 사이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크게 떨어진 상태다. CNN은 이번 행정명령에 대해 “화가 난 무슬림과 아랍계 미국인 유권자를 향해 보내는 신호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후에는 미시간주를 방문했는데 이 지역은 미국 50개 주 가운데 아랍계 시민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또한 미국 대선의 최대 경합주로 꼽히며 지난 대선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가까스로 역전에 성공한 곳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시간주에서 흑인 지도자들과 만나고 자신에 대한 지지 선언을 밝힌 전미자동차노조(UAW)를 방문해 노조원들과 환담했으나 가는 곳마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하는 친(親)팔레스타인 시위대와 마주쳐야 했다. AP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의 미시간 일정에 아랍계 미국인과의 만남이 전혀 포함되지 않아 아랍계의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의식한 듯 백악관은 아랍계 표심 달래기에 힘쓰는 모습이다.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바이든 정부의 고위 관리들이 이달 중 다시 이곳을 방문해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아랍계 주민대표들의 의견을 청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