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현행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제도인 준연동형제 유지 방침을 밝히면서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4·10 총선 정국이 ‘위성정당’을 중심으로 급변하게 됐다. 국민의힘은 “선거제가 이 대표 한 사람의 손에 좌지우지됐다”면서 ‘병립형 비례제’ 입장을 재차 주장했지만 현행 선거제 유지에 대비해 일찌감치 위성정당 창당 작업에 착수한 상황이다. 비례 위성정당이 우후죽순 등장하면 유권자들만 또 혼란을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며 이 대표의 ‘준연동형 유지’ 입장에 “그 제도는 왜 그렇게 계산돼야만 하는 것에 대한 논리적인 필연적 근거가 없다”며 “제가 봐도 헷갈리니 국민들께서 자기들 표가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서 아실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개딸 정치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검은 속내를 드러냈다”면서 “의회 독재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민주당이 선거제의 방향을 정리하면서 공은 다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로 넘어가게 됐다. 민주당은 6일 의원총회를 열고 이 대표가 밝힌 준연동형 비례선거제에 대한 의원들의 의견을 모을 예정이다. 앞서 지도부가 선거제 결정에 대한 권한을 이 대표에게 위임한 만큼 별 논란 없이 정개특위로 넘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국민의힘 정개특위 간사인 김상훈 의원은 “국민이 알기 쉬운 병립형 비례제로 가는 것이 확고한 당의 방향이고 흔들림 없는 방침”이라며 “민주당에 다시 한번 권역별 병립형에 대해 촉구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이와는 별개로 지난달 31일 위성정당의 당명을 가칭 ‘국민의미래’로 정하고 온라인으로 발기인 대회를 마친 상태다. 당장 총선이 60여 일 남은 상황에서 민주당과 추가 협상 여지가 없다는 판단이 서면 준연동형제 유지로 빠르게 협상을 마친 뒤 위성정당 창당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신당 창당에 나서온 제3지대 인사들은 이 대표의 결정을 여당의 위성정당 창당 움직임에 등 떠밀려 선택한 ‘악수(惡手)’라고 평가하며 우려를 표했다.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는 이 대표가 ‘준(準)위성정당’이라는 표현을 쓴 것을 두고 “국민을 속이는 꼼수”라며 “양당 독점 정치 구조와 정치 양극화의 폐해를 극대화하는 망국적 발상”이라고 짚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또한 “이재명 대표의 입장에 고심의 흔적이 보이지도 않고 그냥 직무유기”라며 “개혁신당도 위성정당을 만들 수 있다. (다만) 위성정당이 선거법 취지에 반하는지, 부합하는 것인지는 입법 취지를 보면 명확하다”며 위성정당의 부당성을 강조했다. 이준석 대표는 한 위원장을 향해서도 “항상 이재명 대표 뒤에서 도덕성과 준법성을 강조했는데 (이번에는) 선거법에 준하는 정책을 하실지, 다른 레토릭으로 회피할지 기대가 된다”고 날을 세웠다.
한편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재명 대표의 ‘준연동형제’ 결정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의중이 ‘권역별 병립형 비례제’로 기울었다는 관측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전날 이재명 대표에게 “민주당과 조금 우호적인 제3의 세력들까지도 다함께 힘을 모아서 상생의 정치로 나아갔으면 한다”고 조언한 것이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제 정치권의 관심은 야권 위성정당의 통합 범위와 주도권을 누가 쥐게 될지로 모인다. 우선 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열린민주당의 연합정당인 ‘새진보연합’은 이재명 대표의 통합형 비례정당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새진보연합은 이재명 대표의 결정에 환영의 뜻도 밝혔다.
하지만 조국·송영길 신당까지 합류할 경우에는 ‘개딸 정당’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야권 위성정당이 민주당 중심으로 꾸려지면 ‘반윤(反尹) 연대’라는 야권의 주장도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비례 의석수(47개)를 지역구 의석(253개)과 연동해 배분하는 방식이다. 정당이 비례대표 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석수가 적을 경우 비례 의석으로 보전해주는데 이는 비례대표 의원을 정당 득표율대로 배분하는 병립형 비례제와 구분된다. 준연동형 비례는 정당 득표율에 비해 지역구 의석수가 적은 소수 정당의 국회 진입 확대를 목적으로 21대 국회부터 도입됐지만 거대 양당이 비례 의석을 늘리기 위해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취지가 크게 훼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