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가습기 살균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의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증거 부족으로 기각한 1심 판단을 뒤집고 항소심에서 피해자와 유족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서울고등법원 민사9부(성지용·백숙종·유동균 부장판사)는 6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3명에게 300만~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환경부 장관 등이 이 사건 화학물질에 대해 불충분하게 유해성 심사를 했음에도, 그 결과를 성급히 반영해 일반적으로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처럼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고시하고 이를 10년 가까이 방치했다”며 “이는 공무 집행에 있어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은 직무상 위법행위”라고 판단했다.
이어 “이 사건 화학물질이 심사된 용도 외로 사용되거나 최종 제품에 다량 첨가되는 경우에 관한 심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해당 물질 자체의 독성 등 유해성이 일반적으로 충분히 심사 및 평가되지 않았다”며 “환경부 장관 등은 이 사건 화학물질의 용도 및 사용 방법에 대해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아 국민의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2008~2011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뒤 원인 모를 폐 손상으로 치료를 받거나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은 2014년 국가와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 옥시레킷벤키저(옥시)·롯데쇼핑(023530)·용마산업 등 제조 업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조정 성립으로 해당 기업들은 소송 당사자에서 빠졌고 세퓨와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만 남았다.
앞서 1심은 2016년 가습기 살균제 제조 업체의 배상 책임을 인정해 세퓨에 대해 피해자 13명에게 총 5억 4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으나 국가에 대한 청구는 증거가 부족해 기각했다. 피해자 측 변호인은 항소심 선고 직후 “10년의 재판 기간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국가가) 상고 대신 수용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한 국가배상법 제정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