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증시 호황을 맞은 미국·일본에서 주요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을 늘리거나 배당금을 확대하는 등 강화된 주주 환원 조치를 잇따라 내놓으며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다만 주주 환원이 일회성에 그칠 경우 주가에 미치는 효과가 미미하다는 의견과 함께 여유 자금을 연구개발(R&D) 등 미래 먹거리에 먼저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월트디즈니컴퍼니는 2024 회계연도 1분기(2023년 10~12월) 주당순이익(EPS)이 전년 동기 대비 23% 증가한 1.22달러(약 1620원)를 기록했다고 7일(현지 시간) 밝혔다. 디즈니는 올해 주당 배당금을 0.45달러(약 597원)로 책정해 지난해보다 50% 늘릴 계획이다. 또 30억 달러(약 4조 원) 규모의 자사주도 매입하기로 했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디즈니 주가는 시간외거래에서 6%를 웃도는 상승률을 보였다.
메타도 과감한 주주 환원 정책으로 시장을 놀라게 했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메타는 사상 처음으로 3월부터 배당을 실시할 방침이다. 메타가 책정한 주당 배당금은 0.50달러(약 664원)인데 미국의 ‘빅테크’로 불리는 기업 중 배당에 나서는 곳이 별로 없었던 만큼 단연 눈길을 끌었다. 실제 미국의 테크 기업 중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는 꾸준히 배당에 나서지만 아마존, 알파벳(구글 모회사)은 배당을 하지 않은 곳으로 유명하다. 메타가 500억 달러(약 66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까지 공개하자 주가는 20%나 치솟았다.
일본의 미쓰비시상사도 비슷한 사례로 꼽힌다. 이달 6일 미쓰비시상사가 5000억 엔(약 4조 50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방안을 발표하자 이튿날 주가는 9.74%나 뛰었다. 미쓰비시는 당초 1000억 엔(약 9000억 원) 규모로 자사주를 사들일 계획이었지만 매입액을 더 늘린다는 방침이다. 이로써 2900억 엔(약 2조 6000억 원) 규모의 연간 배당금을 합치면 미쓰비시의 총주주 환원은 8900억 엔(약 8조 원)에 이르게 된다. 순이익 전망 대비 약 94%에 달하는 수준이다.
실제 일본에서 자사주 매입 규모는 계속 확대되는 추세라고 현지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상장사들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사상 최대인 9조 6000억 엔(약 86조 원)으로 집계됐으며 올해에는 10조 엔(약 9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에서는 13년 만에 배당을 다시 시작한 곳까지 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으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몬테데이파스키디시에나(MPS)은행이 주주 배당금으로 3억 1500만 유로(약 4500억 원)를 풀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은행은 유동성 위기에 내몰리며 2011년 이후 배당에 나서지 못했지만 최근의 고금리 덕에 은행 수익이 크게 늘어나자 배당을 실시할 수 있게 됐다.
주주 환원은 회사 이익을 주주들과 함께 나누겠다는 의지를 시장에 표명함으로써 신뢰를 제고하는 동시에 향후 실적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주주 친화 정책으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예상해 회사가 선제적으로 꺼낸 조치라는 해석도 나온다. 행동주의 투자자 넬슨 펀츠의 견제를 받는 디즈니가 대표적이다. 일본의 경우 저평가 기업들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금융 당국의 이른바 ‘밸류업’ 정책이 기업 행보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투자를 우선 순위에 놓아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더구나 주주환원이 단발성에 그칠 경우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자사주를 적절한 가치에 사들이는지 여부도 주목된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자사주 매입은 주식이 본질적 가치 대비 할인됐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메타 등 기술주들이 사상 최고가로 거래되고 있어 주주들이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