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펜데믹의 엔데믹 전환에도 불구하고 국내 면세점 업계의 기존 핵심 고객이었던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 매출이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개별 관광객(싼커) 매출이 조금씩 늘고 있는 양상이다. 메인 고객이 유커에서 싼커로 바뀌고 있는 것과 함께 명품 대신 가성비 제품을 찾는 고객이 늘고 있는 것도 면세 업계의 한 트렌드 변화로 읽힌다. 업계는 올해 싼커와 해외 시장 공략에 힘을 쏟는다. 아울러 비면세 사업도 강화한다.
12일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면세점 매출은 13조 7586억 원이다. 2022년 17조 8164억원보다 22.7% 감소한 것이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24조 8586억 원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55%)에 불과하다.
특이할 만한 점은 작년 외국인 방문객이 전년 대비 크게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매출이 고꾸라졌다는 점이다. 면세점의 외국인과 내국인 매출 비중은 8대 2, 9대 1 정도 된다. 외국인 방문객은 156만 명에서 602만 명으로 늘어난 반면, 외국인 매출은 16조 3902억 원에서 11조 726억 원으로 32% 넘게 줄었다. 여기에는 유커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물건을 대신 구입해주는 중국 보따리상인 다이궁이 매장을 덜 찾은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품 매출의 최대 40% 중반까지 지급하던 송객 수수료율을 30% 초반까지 낮추자 다이궁이 발길을 끊었고 그 결과 매출이 직격탄을 맞았다”며 “다이궁 송객 수수료 인하로 매출은 크게 줄어들었지만 영업이익은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이궁과의 갈등으로 더 이상 수수료율을 낮추기는 어려운 실정”이라며 “다이궁을 설득할 수 있도록 국회가 수수료율 상한을 법제화 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업계와 다이궁의 밀고 당기기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값 비싼 명품보다 ‘가성비’와 ‘힙한’ 상품을 찾는 해외 관광객의 소비 트렌드 변화도 우하향 그래프를 그리는 면세점 매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시 말해 과거엔 방한 관광객들의 뷰티 제품 핵심 구매처가 면세점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올리브영 등으로 분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해 CJ올리브영의 외국인 매출은 전년과 비교해 크게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관광객이 늘어나면 매출·영업이익이 동반 상승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지금까지는 다소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 ‘불황에도 잘나가는 명품’은 옛날 얘기가 됐다”고 토로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CJ올리브영이 면세점 ‘파이’를 잠식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업계의 한 관계자는 “면세점과 CJ올리브영의 주요 타깃 고객은 다이궁과 개별관광객으로 구분된다”며 “수요를 서로 앗아가지는 않는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지만 업계는 공격 경영을 펼친다. 현재 해외 6개국에서 14개 매장을 운영 중인 롯데면세점은 올해 글로벌 사업장 정상 운영을 발판으로 해외 매출 1조 원 달성이 목표다. 해외 사업 확장 뿐만 아니라 비면세 사업 개발에도 총력을 기울여 미래 성장 동력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우선 지난해 10월 선보인 면세점 쇼룸 'LDF 하우스(엘디에프 하우스)'와 K콘텐츠를 적극 활용한다. LDF 하우스는 롯데면세점이 고객에게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고, 면세 쇼핑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 만든 면세쇼룸이다. 그동안 이준호, NCT DREAM 등 모델 팝업을 비롯해 시미헤이즈뷰티, 잔망루피, 메디힐X빤쮸토끼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 행사가 진행됐다. 올해 2월 1일부터는 3월 31일까지는 '3CE' 팝업 스토어를 운영하며 기획 세트 판매, 할인 프로모션 등 개별 관광객 대상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나아가 자체 직구몰인 '긴자 일본직구'와 해외 거주 외국인이 이용할 수 있는 역직구몰(OVERSEAS SHIPPING) 활성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
신라면세점은 달라진 고객 트렌드를 집중 공략하고 외국인 대상 프로모션을 강화한다. 최근 인천공항 제2 터미널에 니치 향수 메가 팝업 매장을 비롯한 트렌디한 매장을 대거로 선보였는가 하면 대만에서 열린 국제여행박람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상품 구성부터 이동버스 등 인프라까지 단체 고객을 맞을 수 있도록 재정비하고 있다”며 “내년 하반기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했다. 신세계(004170) 면세점은 콘텐츠 개발, 비즈니스 접점 확대를 통한 개별 관광객 유치에 공을 들인다. 또 ‘인천 공항 매장 안정화’에도 총력을 쏟는다.
현대백화점(069960)면세점은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마케팅도 전개하고 있다. 럭셔리 전용 멤버십인 H.럭스 클럽(H.LUX Club)에 가입한 후 럭셔리 패션·주얼리·워치를 구매하면 최대 10만 원을 돌려주는 행사를 상시 진행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개별 관광객 고객 비중이 늘어나며 수익율이 점진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다만 적지 않은 개별 관광객이 명품보다 일반 뷰티크숍 가성비 제품을 선호하고 있다는 점은 면세점 입장에서 리스크 요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