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4년 기금 고갈이 예정돼 있는 국민연금을 둘로 나눠 젊은 세대는 지금부터 따로 연금을 적립하고 구세대는 정부가 예산 지원을 해 급여를 받게 하자는 정책 제안이 나왔다. 이대로라면 기금이 바닥난 뒤 신세대가 현재의 소득대체율(40%)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재 9%인 보험료가 35%까지 치솟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1일 ‘국민연금 구조개혁 방안’ 보고서에서 “세대 간 형평성을 고려해 미래 세대가 납부한 보험료와 운용수익만큼 연금급여를 지급하는 신(新)연금 도입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KDI의 안은 연금 개혁이 이뤄지면 국민연금 신규 가입자들의 보험료는 새로 만든 계정에 완전 적립식으로 납입하자는 것이 뼈대다. 완전 적립식은 납입자에게 부과된 보험료의 원리금으로 기금을 조성해 연금급여를 충당하는 방식이며 이론상 낸 만큼 돌려받게 돼 있다. 반면 부과식은 뒤 세대의 보험료로 앞 세대의 연금을 주는 방식인데 한국은 초기 연금 가입자에게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해 이 둘을 혼합한 ‘부분 적립식’을 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KDI는 지금의 납입 조건이 유지될 경우 2054년 기금이 소진되며 보험료율 조정만으로 가입자들에게 약속한 연금급여를 지급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이 35% 안팎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봤다.
지난해 11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보험료율 13% 및 소득대체율 50% △보험료율 15% 및 소득대체율 50%라는 모수 개혁안이 제시했지만 보험료율을 9%에서 18%로 올려도 2080년께에는 전체 적립금 소진을 피할 수 없다는 게 KDI의 판단이다. KDI는 저출생·고령화 추세를 고려하면 어떤 식으로 모수를 조정하더라도 미래 세대는 납부한 보험료 대비 급여가 적은 상황을 피할 수 없다고 예측했다. 지금의 구세대는 납입액보다 많이 받는 형태여서 세대 간 형평성을 크게 훼손한다는 것이다.
KDI는 올해부터 노동시장에 본격 진입하는 청년층(2006년생)부터는 신연금을 만든 뒤 보험료와 운용수익 등에 따라 급여가 결정되는 확정기여(DC)형으로 전환해 운영하자고 강조했다. KDI는 “신연금 보험료율을 15.5% 내외까지만 올려도 40%의 소득대체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면서 “2006년생 이후 세대의 기대수익비는 1로 안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KDI는 9%에서 15.5%로 6.5%포인트만큼 보험료율을 단번에 올리거나 단계적으로 올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이 국민연금을 확정급여(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한 바 있지만 KDI는 신구를 나눠 연금을 DB형과 DC형으로 나눠 운용하자는 입장이다.
KDI는 신규 보험료가 끊기는 구연금은 당초 정한 급여(DB형)를 주도록 하되 정부가 재정을 지원해 부족분을 충당하자고 했다. 약속된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 국민연금의 핵심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재정 부족분(미적립 충당금)은 올해 기준 609조 원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강구 KDI 연구위원은 “구연금의 기금 고갈이 예상되는 시점인 2046년부터 약 13년간 국내총생산(GDP)의 1~2% 수준의 재정 부담이 예상된다”며 “우리 추산에서 609조 원은 재정 부담 최솟값이며 연금 개혁이 늦춰질수록 재정 부담은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연금이 보험료만큼 되돌려받게 되면 사적 보험과 차이가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강제 저축으로의 의미가 있다”며 “지금까지 국민연금의 운용수익률이 시장수익률보다 0.11%포인트 높아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KDI는 “신연금 제도에 대한 국민적 참여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향후 신연금에서 발생하는 연금급여에 대해 소득세 혜택을 주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 안팎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연금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금 이원화보다는 보험료 인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와 정치적 합의가 우선이라는 얘기도 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공무원 등 직역연금과 국민연금 통합을 포함한 전반적인 구조 개혁 방안을 함께 들여다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