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연 3.5%인 기준금리를 9연속 동결하며 통화 긴축 기조를 유지했다. 올해 상반기 내 금리를 인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신호도 명확히 내비쳤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 금리 인하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금리가 아닌 미시 정책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은은 22일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하기로 했다. 지난해 1월 연 3.25%에서 연 3.5%로 인상한 후 9회 연속 동결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물가가 굉장히 울퉁불퉁하게 내려오고 있다”고 밝히며 “라스트 마일(목표에 이르기 직전 구간)에서 물가가 어떻게 될지 봐야 한다”고 밝혔다.
부동산 PF 위기 등으로 인해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 총재는 “모든 PF가 살아날 수는 없겠지만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PF 문제는 미시적인 정책을 통해 금융 안정을 도모해야지 금리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4월 총선 이후 PF 부실이 터질 것이라는 이른바 ‘4월 위기설’에 대해서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총재는 “총선 이전에 부동산 PF가 넘어질 것을 다 막아줘서 그 다음에 터진다는 것은 굉장히 큰 오해”라며 “총선 전후로 크게 바뀔 것이라는 근거가 무엇인지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고 했다.
이 총재는 섣불리 금리를 내린 후 부동산 시장의 불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금리를 내릴 때 부동산 가격을 자극하지 않도록 정부와 거시 안정 정책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게 몇 년 동안 저희가 배운 레슨”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올 상반기에 금리 인하가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재차 밝혔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상반기 내 금리 인하를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의견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며 “그 이후는 5월 수정 경제 전망 때 숫자를 보고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통위원 6명 중 5명은 3개월 후에도 현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견해를 나타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날 금통위에서는 내수 부진에 ‘3개월 후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소수 의견도 나왔다.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과 물가 상승률 전망치에 대해서는 각각 2.1%, 2.6%를 제시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제시한 것과 같은 수치로 국제통화기금(IMF·2.3%), 기획재정부(2.2%)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 전망치는 1.9%에서 1.6%로 내려 잡았다. 김웅 부총재보는 “고금리·고물가에 내구재와 비내구재 소비 상황 모두 좋지 않다”며 “특히 가계부채 상환 부담에 소비 핵심 연령층인 40대의 소비가 제약 받고 있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반도체와 자동차를 중심으로 수출 호조세가 이어지고 있어 전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기존의 2.1%를 유지했다. 물가 상승률 역시 지난해 11월 전망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고 평가했다. 다만 내수 부진에 근원물가 상승률은 2.3%에서 2.2%로 하향 조정했다. 근원물가 상승률은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 등을 제외한 물가 상승률을 뜻한다.
시장은 새 경제 전망이 발표될 5월에서야 금리 인하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는 반응이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완화적 색채가 짙어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중론은 상반기 금리 인하는 어렵고 추후 판단은 5월 경제 전망 이후로 유보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상황을 종합하면 금리 인하는 일러야 7월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