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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 설치작품이 되다

■필립 파레노 국내 첫 개인전

리움, 상설전시만 제외 전관 할애

떠다니는 물고기 등 40여점 전시

야외 상징물 철거 후 센서탑 설치

기온·풍량 등 수집해 내부로 전송

관객들에 새로운 '오감체험' 선사

필립 파레노의 설치 작품 ‘내 방은 또 다른 어항’. 사진 제공=리움미술관필립 파레노의 설치 작품 ‘내 방은 또 다른 어항’. 사진 제공=리움미술관




미술관의 주황색 창에 햇살이 쏟아지자 허공을 둥둥 떠다니던 물고기가 빛난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주황색 가루는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의 뚜껑에 흘러내리고, 천장에 달린 4개의 사각형 스피커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언어가 들려온다. 사람이 없는 피아노는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pianp man)’을 연주한다. 이상한 나라에 도착한 ‘앨리스’처럼 고개를 두리번거리지 않을 수 없는 이곳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리움 미술관이다.



리움미술관은 28일부터 전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프랑스 작가 필립 파레노의 개인전 '보이스(Voicese)를 개최한다. 필립 파레노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흐릿한 영역을 탐구하는 실험적인 작가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90년대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4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필립 파레노. 사진제공=리움미술관필립 파레노. 사진제공=리움미술관


전시장은 마치 오래된 테마파크 같다. 다양한 매체와 데이터, AI, 디지털 멀티플렉스 등 현대 기술이 활용했지만, 작품들은 고장난 놀이기구처럼 제멋대로 작동하고 있다. 리움미술관은 개관 이래 처음으로 상설전 공간을 제외한 미술관 전체를 작가를 위해 할애했다. 관객은 거대한 설치 작품으로 변신한 미술관 안에 들어온 듯한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전시의 제목 ‘보이스’는 ‘다수의 목소리’를 의미한다. ‘다수의 목소리’는 그간 리움미술관의 상징과도 같았던 아니쉬 카푸어의 ‘큰 나무와 눈’이 놓여있던 야외 데크에서 만날 수 있다. 미술관은 12년 간 놓여있던 이 작품을 철거하고 필립 파레노가 제작한 커다란 첨탑을 설치했다. 작가는 미술관에서 전시할 때 항상 외부에 센서를 배치한다. 외부 세계와 등을 돌린 견고한 미술관의 벽에 ‘틈’을 내고 싶다는 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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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 야외에 설치된 타워 모양의 인공지능 구조물 막(膜). 사진제공=리움미술관리움미술관 야외에 설치된 타워 모양의 인공지능 구조물 막(膜). 사진제공=리움미술관


리움미술관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이 작품의 이름은 ‘막(膜)’. 첨탑처럼 생긴 인공지능(AI) 구조물이다. 막에는 예민한 감각을 지닌 하나의 캐릭터가 살고 있다. 막은 42개의 센서를 이용해 야외의 기온, 습도, 풍량, 소음, 대기오염 등을 수집하고, 이를 미술관 실내 공간에 전달하는 일을 한다.

캐릭터는 목소리도 있다. 작가는 국내 배우 배두나의 목소리를 AI로 구현해 '∂A'(델타 에이)로 탄생시켰다. 델타 에이는 언어학자가 발명한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고 외부 정보와 교류하며 전시의 모든 요소를 조율한다. ‘막’을 통해 미술관에 모인 데이터는 천장에서 돌아가는 4개의 스피커를 통해 소리로 변환되거나 새로운 목소리를 자극하며 미술관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리얼리티파크의 눈사람. 사진제공=리움미술관리얼리티파크의 눈사람. 사진제공=리움미술관


M2관 B1에서는 흙이 덕지덕지 묻은 눈사람들이 관객을 기다린다. ‘리얼리티 파크의 눈사람(1995~2023)’은 지저분하고, 금방 녹아 없어진다. 미술관은 전시 기간 내내 녹아내린 눈사람을 다시 제작해야 한다. 작가는 “미술관은 안정적인 환경을 유지해야 하는데 눈사람은 공기와 습도에 반응하는 ‘불청객’”이라고 말했다. 값비싼 작품을 지키느라 견고한 벽돌로 지어진 미술관에 틈을 내고, 관객들이 작품을 마음껏 느끼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다.

1시간 30분간 영화를 상영하는 블랙박스를 지나 마주한 그라운드 갤러리는 더욱 기이하다. 건물 벽면이 떨어져 나온 듯한 벽은 관객을 향해 돌진하고, 헬륨 가스로 띄운 말풍선 모양의 풍선 수백 개가 둥둥 떠다니며 관객의 시야를 가린다.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긴 생머리의 사람들이 ‘후이~’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이들은 퍼포먼스 작가 티노 세갈의 신작 중 일부를 매일 에스컬레이터에서 공연한다.

전시는 난해하다. 가이드도 없고, 거대한 미술관 전체가 하나의 설치 작품처럼 구성돼 시간도 만만치 않게 필요해 보인다. 작가는 “어차피 이 작품들은 몇 달 간 존재하다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시를 연약한 구조로 만들었고, 미술관이라는 경험화된 공간에 틈을 냈다”며 “관객들은 마음대로 헤매고 관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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