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이 기업의 ‘자율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금융지주 주가가 맥을 못 추고 있다. 금융 당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금융업 특성상 자본 정책을 자유롭게 펴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론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금융사들이 포함된 코스피200 금융지수는 이틀 연속 하락 마감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발표되기 직전일보다는 3.4%(26포인트)가량 내린 것이다.
금융주들의 저평가 원인인 ‘자본 활용’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밸류업 프로그램에 담기지 않은 점이 투자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지주들은 법령에 근거한 규제 자본 비율을 상회하는 여력을 보유했음에도 자유롭게 자본 정책을 펴지 못했다. 지난해 금융 당국이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에서 자율성을 부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물밑에서는 여전히 당국 설득에 진을 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융지주가 수조 원을 이익으로 벌어도 외국인 주주들이 꿈쩍하지 않는 것은 배당 성향이 당국에 좌우된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국이 엇박자 시그널을 금융지주들에 보내는 점도 한몫한다. 한편에서 적극적인 주주 환원을 주문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공적 기능 수행을 위한 자본 여력을 갖출 것을 압박하는 식이다. 표면적으로는 자율성을 강조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당국과의 줄타기를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금융지주의 한 관계자는 “당국이 충분한 손실 흡수 능력과 자본 여력을 갖출 것을 주문하는 상황에서 눈치를 안 보고 자율적으로 주주 환원을 대폭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특히 최근처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이슈가 불거지는 시점에서는 더욱 모른 척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금융지주들이 자사주 정책을 꾸준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배당 총액이 완만히 증가하면 주당배당금(DPS)의 의미 있는 상승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도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대형 은행주들이 2~3%대의 낮은 배당수익률에도 불구하고 배당주로 각광받는 것은 매년 DPS가 상승할 것이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 은행들도 자본 정책의 자율성이 보장된다면 요구되는 배당수익률이 현재(5~7%대)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배당주로서의 가치가 진정으로 제고되려면 추후 장기 투자에 대한 배당소득 세제의 개편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