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시장에 관심 많으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지난 27일부터 한국 방문 일정을 소화하면서 국내 IT 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10년만의 방한으로 화제를 모았죠. 저커버그는 28일 점심 LG전자 조주완 CEO를 만난 다음, 저녁에는 그의 아내와 함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만찬을 하며 분주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포인트가 이 회장과 저커버그의 저녁자리인데요. 이 회장은 삼성전자 사장단 없이 혼자서 저커버그 내외를 맞이하고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고 합니다. 삼성전자 측은 이 사실 외 구체적인 대화 내용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궁금증이 더 커집니다. 단 셋만 있는 저녁 자리에서 과연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 또 대화 중에 어떤 생각을 하면서 새로운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었을까.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는 반도체 산업에 포커스를 맞춘 연재물인만큼 이들이 '칩' 사업에 대해 나눴을 법한 대화와 생각을 한번 추정해보려고 합니다. 크게 두 가지 토픽입니다. 증강현실(AR)과 서버용 AI 반도체인데요. 총 2편으로 나뉩니다. 우선 이번 편은 AR용 칩에 관한 것인데, 메타가 지난주 미국에서 열렸던 세계적인 반도체 설계 학회 'ISSCC 2024'에서 발표한 자료를 중심으로 어젯밤 그들의 저녁 자리를 재구성해봅시다.
ⓛ스마트 안경용 칩, 이재용 X 저커버그 콜라보 만들 수 있을까
저커버그는 스마트 안경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27일 일본에서는 메타와 레이밴이 함께 만든 스마트 선글라스를 낀 채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먹는 모습을 자신의 SNS 계정에 올렸고요. 메타의 AR 헤드셋 '퀘스트' 시리즈 역시 그의 자부심이자 자랑거리입니다.
그는 현재의 AR 헤드셋이 우리가 평소에 쓰는 안경 크기까지 진화할 것이라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연구개발(R&D)에 전념하는 듯 합니다. 구체적인 예가 메타의 '아리아(Aria) 프로젝트'입니다. 생생한 AR 구현과 고도화한 AI 컴퓨팅 기능이 평범한 안경 안에 총결집하는 기술을 꿈꾸며 야심차게 가동한 프로젝트죠.
이런 고성능 안경을 구현하려면 당연히 그에 걸맞은 초고성능 반도체가 필요할 텐데요. 메타는 현존하는 퀘스트 AR 헤드셋에는 미국 반도체 설계 회사 퀄컴의 AR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주로 쓰고 있지만 말이죠. 스마트 안경을 개발하는 아리아 프로젝트에서는 자체 AR 칩을 탑재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그 칩이 무엇인지 조금 더 보시겠습니다.
메타가 ISSCC 2024 학회에서 공개한 칩의 모습인데요. 아리아 프로젝트의 스마트 안경 속에 탑재돼 '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온칩(SoC) 시제품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7나노 공정으로 만들었다는 가로 0.41㎝, 세로 0.37㎝ 크기의 SoC의 내부는 어떻게 생겼는지 한발 더 들어가서 살펴보겠습니다.
이 손톱크기보다도 작은 칩은 한마디로 '외유내강'입니다. 우선 정보를 연산하는 중앙처리장치(CPU)와 함께, 칩에 내장돼 연산을 빠르게 보조하는 메모리 ‘SRAM(S램)’이 32MB 용량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머신러닝 가속기(ML Accelerator)가 있습니다. 스마트 안경이 받아들이는 각종 데이터들을 아주 빠르게 학습하고 연산해 도출한 결과값을 사용자의 눈 앞에 전달하는 장치겠죠. 이 가속기만을 위한 3MB 용량의 SRAM 뭉치가 쪽에 따로 배치돼 있는 모습입니다. 한마디로 초소형,고성능 AI·AR 칩입니다.
여기서 S램의 배치가 참 재밌습니다. S램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메모리인 D램에 비해 데이터 전송 속도가 잽싸긴 해도요. 구조가 복잡하고 용량이 작은 데다 비싸기까지 해서 SoC에 원하는 만큼 탑재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죠. 일반적인 연산 프로세서에는 많아봐야 한 자릿수 MB 용량의 S램만 배치하는데요. 이 칩에는 SRAM 용량을 수십 MB로 가져가면서, 정보 처리 지연성을 낮추고 스마트 글라스 사용자의 '디지털 멀미' 현상을 최소화하겠다는 메타 엔지니어들의 의지가 엿보입니다.
아니 그럼, 도대체 이 많은 SRAM과 고도화한 연산 장치를 어떻게 손톱보다 작은 칩에 구현을 하겠다는걸까. 이 칩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칩을 '결합'하는 데서 답을 찾았습니다. 2개 칩으로 나눠서 만든 다음, 칩을 가교(범프) 없이 아주 미세하고 정교한 간격으로 포개어버리는 최고급 결합 기술을 쓴 것인데요. 요즘 반도체 공정 업계 최대 화두인 그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 맞습니다. 이 칩 안에는 2마이크로미터(㎛) 간격으로 2만 7000개의 하이브리드 본딩 배선 연결을 구현했습니다. 16MB SRAM과 또다른 16MB SRAM, 머신러닝 가속기와 SRAM을 수직으로 잘 이어붙여서, 그걸 ‘따로 또 같이’ 한 개 칩처럼 만들어낸 기가 막힌 기술이죠.
ISSCC에 나온 아리아 프로젝트의 칩 자료를 보면 곳곳에서 파운드리 1위 TSMC와 협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납니다. ‘SoIC’라는 용어가 발표 자료에서 자주 눈에 띄기 때문인데요. SoIC는 TSMC만의 하이브리드 본딩 브랜드죠. 사실 현재까지 파운드리 시장에서 이종결합(異種結合·heterogeneous)을 하이브리드 본딩으로 할 수 있는 업체는 유일한 업체가 TSMC이기에 메타도 이 회사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 의견입니다.
이제 다시 이 회장, 저커버그 부부의 저녁 자리를 상상해볼까요. 저커버그가 AR 반도체에 대한 화두를 꺼냈다면 이러한 내용들을 자신만의 이야기로 풀어서 이 회장에게 전달했을 것 같습니다. 이 회장은 마주하고 있는 마크 저커버그의 생각을 듣고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삼성 파운드리가 메타와 AR 칩 협업 사례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2019년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은 메타(당시 페이스북)의 7나노 AR글라스용 AP 개발 과제를 수주한 적 있습니다. 다양한 시도 끝에 결국 양산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삼성과 메타가 이 분야에서 칩 동맹을 시도하려면 이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무언가가 있어야겠죠. 이 회장은 삼성 파운드리가 AR 분야에서 TSMC와는 다른 선단 전공정·결합 기술을 제공할 수 있다는 해답이나 방향성을 그에게 제시했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새로운 파운드리 영역에 관한 영감을 얻었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과연 저커버그는 이 자리에서 이 회장과 협업한다면 미래에 스마트 안경 리더십을 주도할 수 있겠다는 신뢰를 얻었을까. 이 회장은 이번 대화로 저커버그와 반도체 협업을 해서 TSMC와 간극을 좁힐 수 있겠다는 실마리를 찾았을까. 세 사람의 저녁 자리 이후 삼성전자와 메타의 AR 반도체 협력을 관심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저커버그와 서버용 AI 반도체, 그리고 이에 대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생각을 따라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