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 있는 집에서 사는 것, 세상 모든 도시인의 꿈이 아닐까요? 용사님이 꿈꾸는 정원은 어떤 스타일이에요? 음... 저는요 일단 제가 제일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로즈를 왕창 심고, 커다란 목련 나무도 한 그루 있으면 좋겠어요. 에... 그리고 또 무화과 나무를 심고요 그 옆엔 고구마랑 샐러리도. 이렇게 적고 보니 제 머릿속 정원은 꽃밭보단 텃밭에 가깝군요. 아마도 세상 사람들의 숫자만큼 다양한 모습의 정원이 있을텐데요. 그런데 정원에도 더 ‘환경적인 정원’이 있다는 거 아세요? “꽃과 나무 심는 건데 다 환경적인 거겠지?”라고 생각한 에디터는 얼마 전 ‘이 정원’에 다녀와서 생각이 완전 바뀌었어요. 서울에서 가장 큰 정원인 서울 식물원, 정확히는 올해 서울식물원 식재설계 공모전에서 수상한 5개의 정원을 보고서요. 정원과 식물에 문외한인 에디터를 위해 식재설계 공모전의 심사위원장이자 서울식물원 조경을 총괄한 감이 디자인랩의 정우건 소장님 그리고 유혜경 서울식물원 전시교육과 과장님이 동행해 주셨어요. 보는 사람 뿐 아니라 환경까지 생각한 정원은 어떤 모습인지, 지금부터 함께 산책해봐요!
지켜만 볼게...근데 이제 3년 동안(!)
먼저 이 정원이 어디 있는지부터 알려드릴게요. 서울식물원 식재 설계 공모전 수상 정원은 마곡나루역(9호선·공항철도) 3번출구에서 서울식물원 방향으로 나와 숲 문화학교 쪽으로 오시면 돼요. 공모전 수상 정원은 시민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서울식물원 식재설계 공모전은 2020년 시작해 올해로 4회째를 맞이했는데요. 이 공모전의 가장 큰 특징, 한 번 정원을 조성하면 3년간 유지하며 변화를 관찰한다는 것.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보기 드문 방식입니다. 한 해만 화려하게 피고 사라지는 정원이 아니라, 도시 기후에 잘 적응하는 식물과 정원을 찾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라고.
특히 올해의 주제는 더욱 친환경에 초점을 맞췄어요. 바로 ‘미기후로 만드는 아름다운 저관리형 정원’인데요. 무슨 외계어 같죠? 먼저 미기후란 주변 환경과는 다른, 지상에서 약 1.5m 사이의 ‘작은 기후’를 얘기해요. 정우건 감이 소장님은 “돌 하나가 놓여서 생긴 그늘에 의해 식물이 자라날 수 있는 것이 바로 미기후”이라고 설명해주셨어요. 미기후가 현대에 중요해진 이유는 급격한 기후변화에서도 식물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자 그럼 저관리형 정원이란 뭘까요. 한 마디로 얘기하면 사람의 손이 덜 가고, 자연의 힘에 의해 살아가는 정원을 뜻해요. 꽃은 예쁘지만 우리 기후에 맞지 않아 물을 자주 줘야 하는 식물은 저관리형 정원에 적합하지 않아요. 한 해만 피고 지는 1년생 식물도 어울리지 않고요. 반대로 생명력이 강하고 올해 졌다가 내년에 또 피어나는 다년생 식물은 저관리형 정원에 딱 맞는 식물들인 거죠.
이런 까다로운 기준에도 훌륭한 실력을 발휘해 공모전 수상작으로 선정된 작품은 △나를 미소짓게 하는 ‘뜻밖의 정원(반반) △ROCK WITH YOU(주원주·김현아·양지우) △숲:쉬다(김대욱·박영옥) △Let it BEE(김새롬·안주리) △작은 소망(변인환) 이렇게 다섯 곳이랍니다. 이제 정원 구경 스타트!
이거 다 장식 아닌가요? (아님)
①다리 아플 때 쉬어가는 의자인 줄 알았는데...
나를 미소 짓게 하는 '뜻밖의 정원'에 설치된 철망 의자.바람이 통할 수 있는 숨 구멍 역할을 한대요. 돌과 나무 틈도 식물의 안식처가 돼 준다고.
②버려진 나무토막?
정원의 움푹하게 파인 부분에 놓여있는 나무토막. 연출을 위한 장식인 줄 알았는데, 습기를 좋아하는 식물들을 위해 습기를 머금어 유지하는 중차대한 미션이 있다고. 또 비가 많이 올 때 식물의 뿌리가 쓸려내려가지 않도록 지지해줘요.
③고인돌인가요?
작품명 'ROCK WITH YOU'는 미기후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는 정원이에요. 중간에 바위로 인공 풍혈(바람구멍)을 만들고 그 주변에는 어둡고 축축한 곳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심었어요. 서울식물원에서도 이 실험이 성공할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④이 수반은 장식용이죠?
작품명 'Let it BEE'는 공모전 수상 정원 중 가장 다정한 정원이 아닐까 싶어요. 이름대로 벌들을 위한 정원을 꾸몄는데요. 벌이 잘 인식하는 파란색, 보라색, 흰색 계열의 꽃을 심고 야생벌 호텔과 음수대까지 마련해뒀어요. 혹시나 벌이 빠지지 않도록 자갈을 깔아 수심을 얕게 조절했대요. 그래서 그런지 이 정원에만 벌이 붕붕 날아다니더라고요.
도심에서 키우기 좋은 꽃, 도라지...?
맨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서울식물원의 식재 설계 공모전은 3년간 정원의 변화를 지켜보는 게 가장 큰 특징이에요. 벌써 4년차이니까, 1회에서 수상한 정원은 약속한 3년을 다 지켜본 셈이죠. 그 사이 달라진 점, 소득은 뭐가 있었을까요. 정 소장님은 이렇게 설명하셨어요. "숲에서는 식물들끼리 소리 없는 전쟁을 하고 있어요. 잘 번지고, 크게 자라는 식물이 우점종이 되면 싸움에 진 식물들은 빛을 못 받아 시들죠. 이 정원(1회 대상 정원)도 그런 생존 전쟁이 벌어졌어요. 지금 살아남은 것들은 도시 환경에 적합한 식물로 검증된 셈이에요".
그렇담 과연 어떤 식물들이 생존했을까요. 정 소장님은 "저기있는 도라지 꽃도 도심에서 기르기 적합한 꽃이고 집에서 화분으로 키워도 좋다"고 하셨어요. 유 과장님도 한 마디 거들어주셨죠. "밥티시아(사진 왼쪽)라는 콩과 식물이 새로운 발견이었어요. 보라색 꽃이 예쁘기도 하고 공기 중의 질소를 뿌리로 가져가 흙으로 돌려주는 역할도 하는 기특한 식물이죠. 앞으로 도시 조경에 적극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벼목에 속하는 사초과 식물(사진 오른쪽)들도 훌륭고요.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어떤 환경에서든 자라는 강인한 식물이에요".
초록초록한 이번 지구용 레터 다들 재밌게 읽으셨나요? 레터를 읽고 정원을 직접 찾아가 보시면 진짜 재미 보장! 일정이 미정이긴 한데, 조만간 식재 설계 수상 정원 도슨트 프로그램도 열 거라고 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기다렸다가 꼭 신청해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