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美 반도체 보조금의 양면

강인수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美 반도체 공급망 완성돼 갈수록

우리기업 자율성·입지 위축 우려

첨단생산·초격차기술 연구 위한

국내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시급





미국 텍사스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가 미국 반도체지원법(칩스법)에 따라 60억 달러(약 8조 원) 수준의 보조금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애리조나에 400억 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짓고 있는 대만의 TSMC에 대한 보조금이 50억 달러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금 대비 보조금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반도체지원법에 따른 미국의 반도체 생산 보조금 총액이 390억 달러인 상황에서 600개 이상의 반도체 기업이 700억 달러의 보조금을 신청했기 때문에 보조금을 받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삼성전자가 TSMC보다 많은 보조금을 받는 것은 투자 진행 속도가 빠르고 지난해 7월 앞으로 20년 동안 텍사스 테일러와 오스틴에 1921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밝힌 투자계획서상의 일부 투자를 확약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1년 전 발표된 반도체지원법의 반도체 보조금 지급 기준과 가드레일 조항이 여러 가지 독소 조항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초과이익 환수와 생산·연구 시설에 대한 국방부의 접근권을 요구한 것이다. 초과이익 환수는 1억 5000만 달러 이상 반도체 지원금을 받는 기업이 예상을 초과하는 수익을 올릴 경우 보조금의 최대 75%까지 이익을 환수한다는 내용인데 초과이익 심사 과정에서 영업 기밀이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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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생산 시설에서 제조된 최첨단 로직 반도체에 대한 접근권을 요구한 것도 사실상 첨단기술에 대한 사찰을 의미하기 때문에 기술 보안을 담보하기 어렵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미국의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최대 10년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 반도체 설비투자나 공장 증설을 못하도록 하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의 적용을 받는다. 이미 50조 원 넘게 중국에 투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속적으로 예외를 인정받지 못하면 생산 설비를 업그레이드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1년 전만 해도 지금과는 분위기가 상당히 달랐다. 보조금 자체보다는 미국과의 반도체 동맹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우선적으로 고려됐다. 그러나 지난해 반도체 실적 부진으로 인한 현금 부족과 경쟁국들의 자국 중심 반도체 공급망 구축 가속화로 인해 보조금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러나 ‘공짜 점심’은 없다. 기왕에 투자하는 바에 보조금을 최대한 받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미국의 영향력을 감수해야 한다. 미국의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이 완성돼 갈수록 우리 기업의 자율성과 입지가 위축될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은 물론 유럽연합(EU), 일본 등의 경제 안보 전략에는 첨단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기술, 생명공학 등 핵심기술을 육성하고 보호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 반도체 보조금 수령을 계기로 우리의 경제 안보 전략을 보다 공세적인 방향으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핵심전략기술의 초격차 유지를 위해 지지부진한 국내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빠르고 과감하게 추진해나가야 한다. 미국뿐 아니라 EU·일본·인도도 막대한 보조금을 앞세워 반도체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우리의 경우 대기업에 대한 특혜 논란 때문에 보조금에 대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그 대신 반도체와 같은 국가전략기술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을 주기 위해 만든 ‘K칩스법’이 지난해 3월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이 법도 올해 말 일몰을 앞두고 있어 연장 여부도 불확실하고 대기업의 세액공제율은 15%에 그치고 있어 미국 등 경쟁국이 25%인 것에 비해 낮은 실정이다. 직전 3년간 평균 투자액을 초과하는 투자 금액에 대해 최대 10%를 추가로 세액공제해주는 ‘임시 투자세액공제’도 지난해 말 만료됐다.

미국으로부터 반도체 보조금을 받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국내에 첨단 생산 기반과 초격차 기술력 확보를 위한 연구 기지를 구축하지 못할 경우 우리의 레버리지는 사라진다. 미국이 반도체 패권 유지를 위해 선 보조금 지급, 후 초과이익 환수라는 반시장적인 정책까지 도입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도 미국과 공조를 강화하면서도 국내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을 위한 파격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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