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과 중국이 ‘제재 맞불’을 놓으며 갈등 관계가 격화하는 가운데 중국에 진출한 미국과 유럽연합(EU) 기업들의 사업 환경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유럽 기업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규제에만 골몰해 오히려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옌스 에스켈룬드 주중 EU상공회의소 회장은 20일(현지 시간) 장문의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사업 환경이 점점 더 정치화하고 있다”며 “기업들은 중국 시장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기 위한 방법과 관련해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중국의 변화하는 기업 환경은 (서방과의) 무역 갈등으로 인한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중국 정부의 움직임을 반영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중국 정부는 해외 기업과 투자에 대한 개방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차별적인 제재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모호한 국가기밀법과 데이터 처리에 엄격한 규제에 따른 불확실성은 물론 그에 따른 압수수색 위협을 겪고 있다. 의료 장비 등 민감한 데이터를 다루는 업계의 연구개발(R&D)는 특히 어려운 환경에 처했다. 한 관계자는 “제약 회사들이 임상 시험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데이터 보안 규정에 대해 상당한 경각심을 가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EU가 지난해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반(反)보조금 조사에 착수한 후 양측 간 무역 긴장은 고조되고 있다. EU는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중국산 전기차와 철강이 싼 가격에 연내 시장으로 유입돼 공정 경쟁을 해친다고 주장하며 상계 관세를 물릴 것을 예고했다. 중국은 최근 프랑스 브랜디 생산업체 3곳에 대해 반덤핑 조사 계획을 발표하는 등 맞불을 놓았다. 엘스켈룬드 회장은 무역과 투자에 대한 유럽의 대중 접근 방식이 “중국과의 경쟁이 아닌 대중 의존 관계를 뿌리뽑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 역시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숀 스타인 주중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산업계는 국가 안보의 정의와 그것이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대해 양측(미국과 중국)이 더 명확하게 해주기를 원한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측 가능성과 확실성”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중국 업체와 경쟁에 부딪힌 유럽 자동차 업계에서는 내부 사업 환경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루카 데 메오 르노그룹 회장은 전날 “유럽 자동차 부문이 ‘경쟁 불균형’에 노출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소법(IRA)으로, 중국은 막대한 보조금을 통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있지만 유럽은 규제 일변도라는 지적이다. 르노의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시장은 미국과 중국보다 더 높은 에너지 비용을 감수해야 하며 임금 비용은 40% 수준으로 더 높다. EU는 2030년까지 매년 최대 10개의 새로운 규제를 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데 메오 회장은 “자동차 산업은 EU에서 3920억 유로의 가치를 생산하고 전체 세수의 20%를 감당하는 등 경제적 중요성이 높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우려가 발생할 수 있으며 약점의 징후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