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가 고속철·다중로봇을 핵심기술로 지정하는 등 4년 만에 국가핵심기술 정비에 나선다. 산업부가 최근 행정예고한 ‘국가핵심기술 지정 등에 관한 고시’ 개정안에 따르면 고속철도 차체 설계·제조 기술과 발전용 수소터빈 설계·제작·시험 기술, 원자력 관련 2개 기술 등 4개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신규 지정된다. 모호했던 로봇 기술 범위를 구체화해 다중 제조로봇도 핵심기술로 지정된다. 해외로 유출될 경우 안보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큰 국가핵심기술은 해외로 수출하거나 관련 기업을 매각할 때 산업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첫 수출을 노리는 고속철을 비롯해 경제안보 차원에서 중요해진 기술의 해외 유출을 차단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되는 셈이다.
우리 기업들이 애써 확보한 핵심기술이 해외로 새나가지 않도록 지키는 것은 신기술 개발만큼이나 중요하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첨단 기술을 탈취하고 고급 인력을 빼돌리려는 외부의 시도를 막아내는 것은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다. 2019~2023년에 해외로 유출된 총 96건의 산업기술 중 반도체 등 핵심기술 유출은 무려 33건에 달한다. 경쟁사들이 제시하는 파격적 성과 보수에 이직하는 고급 기술 인력도 적지 않다. 국내에서 쌓은 기술과 노하우가 고스란히 경쟁사로 넘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얼마 전에는 SK하이닉스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의 전 연구원이 미국 마이크론으로 이직한 사실이 알려져 법원이 뒤늦게 제동을 걸기도 했다.
정부는 전략산업에 대한 전방위 지원을 통해 초격차 기술 개발과 우수 인재 육성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와 함께 기술·인재 보호를 위한 촘촘한 관리 방안을 마련하는 동시에 기술 유출 행위에 대한 처벌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의 공세로부터 우리의 기술과 인재를 지킬 수 있다. 보조금과 세제 혜택 등 파격 지원을 앞세운 주요국들의 기술 패권 다툼의 틈바구니에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세액공제 혜택, 법인세 감면, 연구개발(R&D) 지원 등 적극적인 산업 정책도 모색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도 고급 두뇌들이 외부의 손짓에 흔들리지 않도록 합당한 처우와 매력적인 기업 문화로 방어막을 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