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공시가 로드맵 폐지의 ‘옥에 티’

尹 정부, 공시가 현실화 로드맵 폐지 발표

왜곡된 부동산 세제 정상화 위한 첫 걸음

법 개정 사항인데도 총선 전 발표…혼란 초래

야당은 정책 대결 외면…깜깜이 선거 반복





정부가 2020년 발표된 전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전면 폐지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공시가격 급등으로 인한 주택 보유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정부가 지난해 공시가율을 로드맵 발표 이전인 2020년 수준으로 낮춘 뒤 올해 폐기 방침을 선언한 것이다. 올해 공시가격은 로드맵 발표 이전의 공시가 현실화율인 69%를 적용해 산출했다. 내년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국토연구원의 연구용역 결과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다만 정부가 2020년 수준을 넘지 않도록 설계하겠다고 강조한 만큼 현실화율은 올해 수준을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공시 가격은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보유세와 건강 보험료 등 각종 부담금의 산정 기준으로 사용된다. 또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취약 계층의 복지 제도 수급 자격을 선별하는 기준으로도 활용되는 등 정부가 운영하는 67개 행정 절차의 중요한 기준점으로 작용한다. 공시가가 단순히 부동산 보유세뿐만 아니라 각종 조세 부담을 결정하는 중요한 근거로 기능해온 셈이다. 이렇듯 납세자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공시가격제도가 큰 부작용 없이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이 60% 안팎에 그쳐 국민들에게 급격한 세금 납부 부담 등을 지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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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 정부는 2020년 부동산 실거래가격과 공시가격의 틈을 좁혀 조세 형평성을 달성한다는 명분으로 로드맵을 발표해 논란의 불을 지폈다. 로드맵에 따르면 9억 원 미만 아파트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2020년 68.1%에서 2030년 90%로, 9억 원 이상 15억 원 미만 공동주택은 69.2%에서 2027년 90%로, 15억 원 이상은 75.3%에서 2025년 90%로 급격하게 오른다. 문제는 시세 반영률을 높이자 공시가격이 오르면서 보유세 부담도 덩달아 치솟았다는 점이다. 특히 전 정부가 정책 실패에 따른 부동산 가격 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시가를 끌어올려 국민의 조세 부담만 가중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급격한 현실화율 상향 조정 계획을 담은 로드맵에 징벌적 과세라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정부의 로드맵 폐기 발표는 왜곡된 부동산 세제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첫 걸음으로 반길만한 일이다. 무리한 공시가 현실화 계획은 증세를 위한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주택 가격 급등이 정부의 정책 실패에 따른 결과물인 점을 감안하면 애꿎은 국민만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미실현 양도 차익에 대해 세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수도 있다. 공시 가격이 시세에 근접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미약하다. 한 연구기관은 2020년 로드맵 발표를 앞두고 열린 공청회에서 대만의 공시가 현실화율이 90%가 넘는다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20%(2020년 기준)를 밑돌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정부가 2020년 수준의 공시가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으로 묶어두기 위해서는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법(부동산 공시법)’ 개정이 필요하다. 총선 결과를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의 성급한 발표는 시장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옥에 티’로 남는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월 주택법 개정 사항인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에 대한 최대 5년간의 실거주 의무를 폐지한다고 발표한 뒤 거대 야당의 반대에 부딪혔다. 지난 2월 가까스로 더불어민주당과의 합의로 법을 고쳤지만 개정된 법은 정부가 발표한 폐지 대신 3년 유예에 그쳤다. 이 과정에서 입주를 앞둔 분양 계약자들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로드맵 폐지에 대한 민주당의 무대응도 비판받아야 한다. 여야는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시가격을 놓고 정책 대결을 펼쳐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의 외면으로 정책 대결은 온데간데없고 표 결집용 구호와 상대당에 대한 비난만 난무하다. 이제 부동산 공시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여부는 이번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에 달려있다. 우리는 각종 부담금의 기준으로 활용될 부동산 공시가격에 대해 민주당의 입장도 모른 채 투표해야 한다. 이렇게 또다시 정책 깜깜이 선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김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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