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이탈이 36일째를 맞이하고 있다. 정부는 당장 개인의 경력을 망가뜨리지 말라며 면허정지 처분 전 돌아오면 최대한 선처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지만 전공의들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의대교수들 등 의료계 선배들을 잇따라 만나며 집단행동의 원심력을 더욱 키워가는 모양새다. 정부는 일부 전공의들이 미국 등 해외의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도 보건복지부 장관의 추천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24일 정부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업무개시명령에도 돌아오지 않은 전공의들의 면허를 당장 다가오는 주부터 차례로 정지시킨다는 계획이다.
복지부가 서면 점검을 통해 확인한 100개 주요 수련병원의 이탈 전공의 수는 지난 8일 오전 11시 기준 1만1994명으로, 전체 인원 대비 이탈률은 92.9%에 달한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22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 위반에 대해 다음 주부터 처분이 이뤄질 예정"이라며 "한시라도 빨리 환자 곁으로 돌아와 의사의 소명을 다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가장 먼저 면허 정지 사전 통지서를 받은 전공의들의 경우 의견 제출 기한이 이달 25일까지다. 이들이 끝내 의견을 내지 않으면 이론적으로는 26일부터 바로 면허를 정지시킬 수 있다. 의사 자격이 정지되면 의사 명의로 할 수 있는 일체의 행위가 금지된다.
정부, “면허정지 처분 받은 전공의들…해외진출 못한다”
현재 일부 전공의들은 한국에서는 의업을 이어갈 수 없다며 해외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 방재승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은 21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전공의들의 상당 부분이 이런 시스템에서 의사 하기 싫다며 미국 싱가포르 의사고시를 준비하고 있다"며 인재 유출을 우려했다.
하지만 정부는 미복귀로 정부로부터 '3개월 면허정지'라는 행정처분을 받은 의사들은 현실적으로 해외 진출을 하기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다. 전공의들이 각자 수련하고 있던 병원으로 복귀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얘기다.
박 차관은 22일 브리핑에서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없는 한국 의대 졸업생이 미국에서 레지던트를 하려면 '외국인의료졸업생교육위원회' 후원으로 발급되는 비자(J-1)가 필요한데, 이 위원회에서는 신청자의 자국 보건당국 추천서를 요구한다"며 "규정상 행정처분 대상자는 추천에서 제외하게 돼 있기 때문에 전공의들이 이번에 (정지) 처분을 받게 되면 추천서 발급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설명했다.
정부 “계약 기간 남은 전공의, 사직서 내도 진료업무 유지해야”
정부는 집단이탈을 한 전공의들이 정부의 행정처분으로 '3개월의 면허정지'를 받은 후에도 자유의 몸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전병왕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통제관(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의사 집단행동 중대본 관련 브리핑에서 "현재 모든 전공의에게 진료유지명령이 내려져 있고 의료법에 따라 진료유지명령이 유효하므로 모든 전공의는 진료업무를 유지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전공의 수련계약은 기간이 정함이 있는 계약이므로 계약관계에 따르더라도 전공의의 사직은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박민수 복지부 2차관도 같은 설명을 한 바 있다. 박 차관은 "(전공의들의) 주장은 민법 제660조를 근거로 하고 있다"며 "이 조항은 약정이 없는 근로계약을 한 경우에 해당하는데, 전공의들은 4년 등 다년으로 약정이 있는 근로계약을 한 만큼 이 조항의 적용대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일반 직장에서는 시한을 두지 않고 입사에서부터 퇴직까지 계속근무를 하는 형태의 근로계약을 맺지만, 전공의들은 계약기한이 정해져 있는 만큼 사직서를 제출한지 한달이 지났어도 수련병원과의 계약이 계속 유지된다는 설명이다.
전 통제관은 "전공의는 전문의 수련 규정에 따라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고 수련병원 외의 다른 의료기관에 근무하거나 겸직 근무해서는 안 된다"며 "수련 중인 전공의가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다른 병원에 겸직 근무하는 경우 수련 규칙에 따라 수련병원장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수 있으며, 타인 명의로 처방전이나 진료기록부를 작성할 경우 의료법에 따라 처벌될 뿐만 아니라 전공의를 고용한 개원의도 형법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전공의들의 현역복무도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이라는 확고한 입장이다. 이번 기회에 복무 기간이 짧은 현역복무를 한 뒤 다시 수련을 시작하거나 개원을 하겠다는 전공의들에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다시 한번 쐐기를 박은 것이다.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의 복무 기간은 37개월에 달한다. 박 차관은 14일 “전공의가 되면 의무사관후보가 된다”며 “의무사관후보생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가 만약에 중간에 어떤 사정 변경이 생기게 되면 의무사관후보생으로 군에 입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의무사관후보생으로 군에 입대해야 된다는 것은 군의관이나 공보의가 된다는 것"이라며 "자의에 따라 사병으로 입대하고 싶다고 입대할 수 없다. 본인이 등록 신청했고 철회할 수 없는 부분이다. 국가의 병력 자원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