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대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홍콩 2024’가 닷새 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막을 내렸다. 올해 아트바젤 홍콩은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몸집을 키웠지만, 화려했던 옛 명성을 되찾진 못했다. 주변 국가에 유사한 아트페어가 우후죽순 등장한 데다 세계를 휩쓴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관람객의 수가 지난해에 비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구매력이 있는 소비자들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작가의 100억 원을 호가하는 작품을 주저없이 구매하기도 했으나, 대다수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데 신중해 갤러리간 빈부격차가 두드러졌다.
관람객 7만5000명, 지난해보다 크게 줄어…판매 성적은?
아트바젤 홍콩은 지난해 화려한 귀환을 알렸다. 팬데믹으로 3년간 파행을 겪은 이후 처음 열린 행사인 만큼 행사에는 32개국 177개 갤러리가 참여했으며, 총 8만6000여 명의 관람객이 행사장을 다녀갔다. 지난해 흥행에 힘입어 아트바젤 측은 올해 행사 규모를 크게 키웠다. 행사 참여 갤러리는 242곳으로 늘었고, 인카운터스(Encoounters) 등 기획 전시에도 힘을 줬다. 하지만 올해 행사 성적은 예년만 못하다. 아트바젤 측에 따르면 올해 행사에는 아시아, 유럽, 북미, 아프리카 등에서 VIP를 포함해 약 7만5000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다. 관람객 수가 지난해 대비 12% 가량 줄어든 셈이다.
갤러리들의 판매 실적은 희비가 엇갈렸다. 행사 기간 동안 100억 원 대 이상 작품을 판매했다는 소식을 전한 곳은 초대형 갤러리인 ‘하우저앤워스(Hauser & Wirth)’ 뿐이다. 홍콩, 런던, 뉴욕 등 세계 곳곳에 지점을 갖고 있는 하우저앤워스는 VIP 프리뷰 개막 첫 날 월렌 드 쿠닝의 작품을 900만 달러(한화 약 121억 원)에 팔아치웠으며, 필립거스틴의 작품을 850만 달러(114억 원), 마크 브래드포드의 작품을 350만달러(한화 약 47억 원)에 판매하는 등 첫 날 수백억 원의 실적을 냈다. 리슨 갤러리는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을 62만5000파운드(한화 약 10억 원)에, 영국 런던과 이탈리아 베니스에 기반한 빅토리아 미로 갤러리는 야요이 쿠사마의 작품 3점을 판매해 총 1100만 달러(한화 약 140억 원)의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상위권 갤러리만 두고 보면 지난해에 비해 실적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이날 아트바젤 측이 제공한 세일즈 리포트에 따르면 10억 원 이상의 작품을 판매한 갤러리는 눈에 띄지 않았다. 스푸트 마거스(Sprüth Magers)는 조지콘도의 작품을 200만 달러(26억 원)에, 화이트큐브는 린 드렉슬러(Lynne Drexler)의 작품을 120만 달러(16억 원)에 판매했지만 하우저앤워스와 나머지 갤러리 간 격차가 극명했다는 평이다. 국내에 지점을 연 한 해외 대형 갤러리 대표는 “올해는 확실히 작년에 비해서 사람이 없어 보이고, 대형 갤러리는 가져온 작품을 제법 팔고 있지만 작은 갤러리는 실적이 좋지 않다고 들었다”며 “아무래도 세계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기 때문에 관람객들이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국 갤러리 중에는 ‘국제’ 독무대…한국 작가 흥행은 성공
한국 갤러리 중에는 국제갤러리가 유일하게 흥행에 성공했다. 작품 가격이 1억 원 안팎으로 해외 갤러리에 비하면 실적이 높은 편은 아니나 김윤신, 강서경 등 세계적으로 작품을 인정받는 작가들의 작품을 대거 팔아치우며 저력을 과시했다. 해외에서 참여한 한 관람객은 “한국 갤러리 중에는 국제 갤러리 작품이 가장 다양하고, 국제 갤러리를 다녀온 후 한국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올해 행사에서는 한국 작가들이 유독 인기를 누렸다. 해외 갤러리 중 상당수가 박서보, 이우환의 대형 작품을 전시장 입구에 걸며 관람객을 맞이했고, 이배, 양혜규 등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해외 컬렉터들이 사들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