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 동안 각각의 다른 작곡가들이 피아노라는 악기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 그 이상을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1년 여 만에 한국 관객을 찾는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는 최근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이번 내한 공연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실험은 물론 20세기 음악을 총망라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싶다”며 “20세기에 가장 혁신적인 피아노 곡들을 만나는 시간 여행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음악학자인 피터 퀀트릴은 “라흐마니노프, 후기 바흐, 슈톡하우젠 모두를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는 유일한 피아니스트는 다닐 트리포노프 뿐”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리사이틀은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데 첫날인 1일은 롯데콘서트홀에서 ‘데케이즈(Decades)’를 부제로 20세기에 급속도로 발전한 피아노 작품들을 소개한다. 현대음악을 대표하는 알반 베르크의 피아노 소나타로 시작해 아카데미상을 받은 존 코릴리아노의 ‘오스티나토에 의한 환상곡’까지 190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작곡된 곡들을 들려줄 예정이다. 지난해 3월 전석 매진을 기록한 내한 공연 이후 그의 한국 방문은 1년여 만이다.
트리포노프가 공연에서 20세기 피아노 곡들을 집중해서 다루는 건 흔치 않다. 트리포노프는 기존에는 고전주의, 낭만주의, 바로크 시대 레퍼토리에 중점을 뒀다. 지난해 내한 공연에서는 라벨과 슈만, 차이콥스키 등의 곡을 들려줬다. 올 연주회에서는 비교적 최근인 20세기 후반부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다룬다. 그럼에도 이번 공연 프로그램 중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건 모차르트 소나타다. 트리포노프는 “팬데믹 기간 공연 취소로 무작정 공연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을 때 모차르트의 소나타 12번을 깊게 파고들 기회를 가졌다”며 “기약 없는 특수한 상황에서 익힌 음악인 만큼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고 전했다.
콩쿠르 사냥꾼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는 트리포노프는 콩쿠르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집중력을 배울 수 있는 점을 꼽았다. 그는 “콩쿠르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특정 부분을 다시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며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즉시 판단해야 하는 만큼 의지력과 집중력을 익힐 수 있다”고 전했다. 콩쿠르는 새로운 레퍼토리를 준비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다만 그는 콩쿠르 참가 자체가 주가 되고 이를 위해 반복적으로 특정 레퍼토리를 연주할 경우 연주자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음악적 영감은 다른 분야 예술을 통해 얻는 편이다. 트리포노프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거나 영화를 보는 것 등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은 음악적 아이디어에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다”며 “자연도 뮤즈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등산을 즐겨 한다”고 전했다. 관객들과 소통을 통해 ‘감정적 지지’를 받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는 “음악가로서 관객과 감정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큰 선물”이라며 “한국 관객들은 수용력이 매우 뛰어나 한국에서 연주하는 건 즐거운 경험으로 기억에 남는다”고 기대감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