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대기업 75% "2026년 ESG공시 어려워…'스코프3'땐 줄줄이 소송"

■본지-한경협 103곳 대상 설문

전세계 협력사 자료검증 어려워

강행 땐 투자자 대규모 소송 직면

美서도 산업계 강력 반발에 제외

韓 도입땐 '기업 리스크' 불가피


국내 대기업 10곳 중 7곳 이상이 2026년 시행을 앞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에 대해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발생시키는 전체 온실가스 총량을 측정해 발표하도록 의무화한 ‘스코프3’ 제도와 관련해서는 이 제도가 국내 기업의 성장을 막는 킬러 규제가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봤다.








2일 서울경제신문과 한국경제인협회가 자산 2조 원 이상 103개 기업을 대상으로 공동 실시한 ‘ESG 공시 의무화’ 관련 긴급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기업 중 74.8%는 “2027년 이후에나 ESG 공시가 가능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앞서 정부는 글로벌 ESG 규제 강화에 대응한다는 목표 아래 국내 기업에 적용되는 ESG 공시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고 이달 중 최종안이 공개될 예정이다. 공시 기준안은 2026년부터 기업들에 적용된다.

대기업들의 준비 상황을 연도별로 보면 2026년부터 바로 공시 시행이 가능하다고 응답한 기업은 전체의 25.2%에 불과했고 2029년 이후(27.2%), 2027년(23.3%), 2028년(22.3%) 등의 순이었다. 자산 2조 원 이상 대기업만을 대상으로 이뤄진 조사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공시가 불가능하다고 응답한 기업도 2곳이나 있었다.



우리 기업들은 특히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스코프3 제도에 대해 불안감을 호소했다. 스코프3 공시를 하기 위해서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협력사에서 자료를 제출 받아야 하는데 규모가 작은 기업에서 제출하는 자료는 산출 체계가 잡혀 있지 않고 검증도 어려워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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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현대자동차의 경우 전 세계 협력사를 모두 더하면 1700여 곳에 달해 일일이 자료 검증을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령 자료 검증을 하더라도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게 기업인들의 지적이다. 이번 설문에서도 응답 기업의 90.3%가 “스코프3를 정확히 측정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설문에 참여한 조선 업종 A사의 한 임원은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는 다운스트림 업종으로 넘어가면 조선사가 을(乙)의 입장에 놓이게 되는데 이 기업들에 자료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는 무엇보다 산업구조가 제조업 중심으로 짜여 있어 ESG와 스코프3 공시가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스코프3의 경우 기업들이 통제하기 힘들고 측정 자체도 현실적으로 어려워 공시 의무화를 강행할 경우 투자자들로부터 대규모 소송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에서도 스코프3를 완화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속도 조절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게리 겐슬러 미 SEC 위원장이 상원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게리 겐슬러 미 SEC 위원장이 상원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실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당초 스코프3를 포함한 기후 공시 규칙을 제정할 계획이었으나 산업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면서 3월 스코프3를 제외한 기후 공시 최종안을 공개했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등 10개 주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기후 공시 자체가 기업들에 과도한 비용 부담을 지우고 있다”며 SEC를 대상으로 소송에 나서겠다고 밝힌 상태다. 미국에서 가장 급진적인 캘리포니아주는 연매출 10억 달러 초과 기업에 대해 스코프3를 의무화하기로 했으나 기업과 농업 단체들을 중심으로 헌법소원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송재형 한경협 공유가치창출(CSV) 팀장은 “ESG 공시에서 기업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명확한 세부 지침을 마련하는 동시에 공시 기업에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공시 오류가 발생하더라도 일정 기간 처벌을 유예해주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용어설명>스코프3=한 기업이 구축한 밸류체인에서 발생하는 전체 온실가스의 양을 의무 측정하는 제도다. 스코프1은 회사가 직접 배출한 온실가스를 뜻하고 스코프2는 회사가 구입한 에너지에서 발생한 온실가스를 의미하며 스코프3는 기업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이 배출하게 되는 배출가스와 각종 물류·운송 및 투자에서 발생하는 가스까지 포함해 규제 범위가 훨씬 더 넓다.


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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